불안, 공포는 감정적 반응이라기보다는, 신경계 반응이다.
그래서 의지로 조절하려고 하면 대응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누구든, 삶의 어느 국면에서는 불안,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안, 공포는 지금의 구조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신호다.
그 구조가 나를 갉아먹고 소모시키는, 나와 맞지 않는 구조라는 경고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 기존의 구조를 내가 넘어서는 성장 시점이어서,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데, 에고가 멈칫하면서 꾸물댈 때 나타나는 신경계 반응이기도 하다.
나를 소모시키는 구조에서 일어나는 신경계 반응은 사실 무의식이 나를 살리기 위해 밟고 있는 브레이크다.
불안
공포
좌절
분노
우울
번아웃
이런 신경계 반응 앞에, 자꾸 '기능적 성취'를 닦달하지 말고, 존재 구조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런 메타인지적 작업은 인지 차원의 문제고, 실제로 그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신경계 차원에서 겪는 불안, 공포를 다뤄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를 더 이상 소모시키지 않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든,
내가 더 통합된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든
불안, 공포를 다룰 줄 알면 삶의 질이 당연히 매우 좋아진다.
과거에 내가 20년 이상의 명상, 10년간 태극권 수련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표현을 글로 종종 표현하곤 했다.
불안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다룰 줄 알아서 불안 그 자체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 과정을 명상의 언어를 쓸 때, 명상 방식이나 정의, 명상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지금 리듬정렬™이름으로 그 과정을 인지과학과 신경계 작용으로 번역하는 작업 중이다.
리듬정렬™(rhythm attunement)이란 자기 참조의 기준점(reference frame)을 외부 평가 중심 → 내부 감각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단순히 의식 수준에서, 인지 차원에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경계 안정을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각성(arousal) 상태에서도 주의의 위치를 잃지 않는 능력, 그래서 ‘중심에 연결된 힘’이 필요하다
어디로 가든 돌아올 수 있다는 신경계 차원의 안전장치다.
나는 중심에 연결된 튜브라는 은유를 자주 쓰는데, 비슷하게 작용하는 이미지 은유는 여러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다.
스쿠버다이버나 번지점프의 라이프라인
중심에 연결된 채 몸에 항상 착용된 구명조끼
절대 끊어지지 않는 줄이 감긴 연, 언제든 빨리 감기만 하면 되돌아올 수 있는 연
한마디로, 평소에 튜브에 연결된 줄을 튼튼하게 단련시키고 있고,
내가 튜브에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신경계 차원에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감정, 생각, 판단이 흔들려도 주의의 기준점이 끊어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능력은 원래 우리가 갖고 있던 능력이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날 때 자기중심에 연결된 힘을 갖고 있다.
자기중심에 연결된 힘은, 나의 무의식적 직관을 포함하여 의식, 신경계와 안정적 동조를 이루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아주 보수적으로, 자기중심에 연결된 힘을 신체 신경계 반응과 연결된 힘으로 제한해서 말하더라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interoceptive self-model (내부 감각 기반 자기 모델)을 기본 탑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자라면서, 특히 근대적 교육 시스템 안에서 성취 위주로 평가받고 보상받는 환경에 놓이면서부터 이 능력이 약해진다.
사회적 평가
언어화 가능한 성과
외부 기준에 대한 즉각적 반응
이 유리해지는 구조를 통과하면서 attention이 지속적으로 외부로 끌려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결이 끊어졌다”기보다는, 내부 모델은 유지되어 있으나 접근 경로(access pathway)가 약화된 상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리듬정렬™은 의식적으로 그 연결을 강화시키는 훈련을 말한다.
글 분량이 길어져서, 다음 글에서 리듬정렬™로 중심에 튜브 연결 강화하는 방법을 이어서 설명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