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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Feb 01. 2024

온전한 통합을 위한 명상의 좋은 점과 힘든 점

(feat. 반지의 제왕)

제가 지금하고 있는 명상은 온전한 내면의 통합을 지향합니다.

불교에서는 참나라 부르기도 하고, 융 심리학에서는 Self라고 부르는 상태와 비슷할 수 있겠습니다.


매 순간 진동수에 따라 그 순간의 나가 다름을 인정한다면,

누구든 찰나의 순간에는 깊은 몰입과 집중을 통해 잠시 참나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순간을 지속할 만큼의 집중력이 부족하고, 생각이 개입되는 순간 바로 에너지는 훨씬 내려가기 때문에 그 참나의 순간이 지속될 때 내 삶이 어떠한지를 현실에서 자각하기 어려운 거죠.


온전한 통합은 평생의 숙제로 삼아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드물지만,

적어도 이번 생의 과정에서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향해 지향하다 보면, 반드시 더 나은 나에 도달합니다.


그 핵심적인 비법이 바로 "의식은 하되, 생각의 개입은 내려놓고, 바로 에너지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몰입 훈련"입니다. 이 훈련이 잘 되다 보면, 신비주의와 자기 계발의 경계에 있는 끌어당김의 법칙, 트랜서핑 같은 일들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내 뜻대로 뭐든 될 수 있는'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삶 앞에 겸손하려 합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그 시점까지 내 마음대로 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정량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부분이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어디 결과까지 내 마음대로 되나요.)


다만, 정말 자기가 원하는 일이면 될 때까지 끌어당김의 법칙에도 기대면서 현실의 노력을 계속하면 '언젠가' 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럼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삶'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테고요.


때로는 내 뜻과 내가 원하는 것이 내 내면이 더욱 성장하고 통합되는 방향과 결을 거스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의식적 차원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무리하게 되고,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 뜻대로 뭐든 얻었다'라고 일시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뭐든 되는 삶'이라는 표현 앞에선 신중하게 됩니다.




대신, 원하는 현실을 끌어당기는 '과정'에 확신은 있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합니다.

'원하지 말고 확신을 갖고 믿어라' '생생하게 감정을 느껴라.'


이건 사실 내면과 조화를 이룬 목표를 향하는 과정의 '결과'입니다.

즉, 자신에게 맞는 목표를 세워 제대로 된 노력을 하며 몰입하다 보면 에너지가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그 순간이 쉽게 상상이 되고 감정이 올라옵니다. 이 과정을 지속하다 보면 원하는 현실에 닿을 시간이 당겨지겠죠.


그렇지 않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목표를 세우면,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그리고 감정을 느끼려 해도, 

내면 에너지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공담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말하는 상태가 되지 않지요.


한편, 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전혀 반대되는 걸 원하는 무의식의 부정적 사고,

무의식의 불안 때문에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요,

매 순간 자신의 불안과 무의식의 그림자 에너지를 알아차리고 그때그때 정화를 하며 몰입을 하면

한결 원하는 지점에 닿는 시간이 앞당겨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상을 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쉽게 말하기에는 원치 않는 지점들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편안함 속에 머무르려는데 (아무리 계획표를 세워 놓고 열심히 산다 한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삶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취지에 해당됩니다.), 우리의 내면이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합니다. 이만하면 됐지 싶을 때, 반드시 삶이 흔들리는 이슈들이 나타납니다. 단계 성장이 있기 전에는 정말 고통스럽게 알을 깨는 과정이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지금 고통의 순간을 겪고 있다면, 제대로 대면해서 고요하게 에너지를 높이면, 반드시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험의 난이도가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신, 나도 지금껏 성장해 왔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문제를 풀 준비도 되어 왔지요.


이건 모든 좋은 이야기의 공통점이기도 하고,

조지프 캠벨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신화를 분석하며 발견한 패턴이기도 합니다.


내면 에너지 통합의 관점에서 삶을 들여다보다 보면,

신화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과거의 뻥이 아니라,

우리 내면 성장의 은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 분석도 더 깊은 무의식의 통합 작용은 빠뜨리고 있는데요,

모린 머독의 '여성 영웅의 탄생' ,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등을 보면 그 부분을 더 살필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도 이러한 영웅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저는 내면 통합의 과정에서 '반지의 제왕' 이미지가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어도 어찌어찌 마음을 먹고) 반지를 찾겠다고 원정대가 처음 출발하던 순간의 길은 어떻든가요? 연두색 풀밭에 꽃도 피어있고, 평평한 들판길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모르기에, 의욕 가득, 의기 충만하여 길을 걷습니다.

비교적 평온하게 우리가 일상일을 해내는 순간들입니다.


그러다 내면의 성장 과정에서 매번 고비를 맞지만,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오래전에 본 영화라 다시 확인하지 않았지만, 통합 과정에서 그다음 시험 난이도가 높아질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목표 달성 지점에 점점 길도 가팔라지고, 식량도 거의 다 떨어지고 힘겹게 주인공이 절벽을 오를 때,

그나마 있던 식량마저 절벽에서 던져버린 골룸이 늘 떠오릅니다.

내가 더 높은 길로 올라가는 걸 끈질기게 방해하는 녀석입니다.


내 앞의 시험에서 저 골룸 녀석같이 방해하는 에너지를 빨리 파악하고,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만만치 않지만, 지금껏 넘어온 순간이 분명 내면 통합으로 향하고 있기에 오늘도 꾸준히 명상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매번 성장의 순간에는 이번이 골룸의 방해를 받는 마지막이길 바라며, 온전한 통합에 얼른 다다르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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