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융심리학 그림자, 가족세우기)
인생을 살면서 지금껏 풀어온 나의 문제 풀이 방식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계기는 돈, 건강, 관계의 문제가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이해하면 마음이 조금 덜 힘들곤 합니다.
오늘은 관계의 문제, 그중에서도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에 중점을 두어 관계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게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의 문제는 끊어낼 수 없는 최후의 관계라는 점에서, 가장 힘든 지점이었습니다.
가족의 인연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가족의 문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끊어낼 수 없는 최후의 관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연이 다하면 끊어지는 관계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가족의 인연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니, 가장 근원적 문제가 가족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들 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본인의 근원적 문제가 가족의 형태로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근원적 문제란, 내면 에너지의 열등한 부분인 그림자 에너지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림자 에너지는 융 심리학에서 많이 언급합니다.
융 심리학의 대가인 이부영 선생님의 '그림자' 책에서도 그림자를 자기의식 차원에서 인정하기 싫은 에너지로 정의합니다.
"자기 속에 있을 리 없다고 부정하는 태만, 불성실, 비겁, 탐욕, 책략 등 온갖 열등한 성격의 한 부분이다."
그림자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투사되는 형태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괜히 어떤 사람이 싫거나, 얄미운데, 알고 보면 자신의 그림자 에너지가 투사되어 그렇게 여긴다는 거지요.
그림자 에너지는 이런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훨씬 근원적 차원에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부영 선생님의 같은 책에서 인용한 마리 폰 프란츠 여사의 말대로, 그림자를 의식해 나가는 것은 "고통스럽고 지루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림자가 이유 없이 얄미운 누군가로 나타나는 수준이라면, 그림자의 통합이 고통스러울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림자는 보통 내가 의식에서 밀어낸 열등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내가 의식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달라고 문제를 일으키는 형태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고요.
명상을 하며 내면 에너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내가 잘라낸 열등한 에너지가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으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 사람은 다 잘못을 했죠.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고, 이렇게 행동해야 해."
실제로 나의 가치 판단은 옳은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내면에너지를 통합하고, 그림자를 통합하는 것은 옳고 그름, 즉 시비是非를 넘어선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압니다. 나도 옳고, 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도 옳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림자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순간에 저 열등한 에너지를 인정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생각의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풀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내가 그 점을 이해하기 전까지 현실의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의 행동만 교정하려 한다면, 풍선 누르기와 같은 효과가 나더군요. 놀랍게도 A의 문제를 교정했더니, B가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이었습니다. 또는 저와 A의 문제가, 가족 안에서 B와 C 사이에 반복되는 형태이기도 하고, 직계 가족은 아니고 집안에서 문제를 일으켜 인연이 옅어진 가족 구성원이 일으킨 문제와 동일하기도 했습니다. 그걸 이해한 이후에는 특정한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을 많이 내려놓고, 그림자 에너지로 이해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가족 세우기 치료'를 수련하는 분들에게서도 확인합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건넬 수 없으니, (정말 온전한 통합에 이른 분들은 가능하지만요), 다른 형태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가족 세우기 치료에서는, 가족 자리에 대역을 세워 그 대역의 무의식적 움직임을 통해 무의식의 움직임을 읽어내려는 것 같습니다. 결국 무의식의 에너지가 가족의 자리를 통해 흘러나온다는 거지요.
그림자 에너지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이 거기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열등하고 보기 싫어서 자신이 잘라버린 모습들을 인정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정인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그림자가 말을 건넬 때는, 그 사람을 비난하고픈 마음뿐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통합을 빨리 끝내는 길은, 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해 주는 겁니다.
당연히 싫습니다.
그로 인한 나의 고통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저렇게 반성하지 않고 잘못하는 사람을 욕을 안 하는 것도 모자라서, 장점을 찾아 인정해 주라니요.
저 사람이 자기 잘못에 대해 먼저 책임져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억울하고 분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특정한 개인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의 그림자 에너지라 생각해 보세요.
만약 정말로 그 사람이 나쁘고, 문제가 많다 해도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내 몫의 그림자 통합, 무의식 정화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내 인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