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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Mar 22. 2024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태극권 수련해서 얻은 효과

스스로를 '게으른 완벽주의자'에다 '일생을 벼락치기로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일생이 벼락치기로 점철되어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와 관련한 가벼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본능적으로 더 이상 미루면 큰일 날 것 같은 시점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일은 한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순간은 본능적으로 알아서 그때부터 울면서 일을 한다. 어제의 내가 왜 놀았을까, 다음번엔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계약 관계라든지, 공식적 마감이 있는 일들은 어떻게든 벼락치기로 끝내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는 한없이 늘어질 때도 많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성향 상, 어느 정도 선에서 실천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끝없이 철저한 계획과 기획으로 넘어가고 있어서다.


벼락치기 성향에는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도 조금 보태는 것 같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마음에,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고 계속 뭔가를 준비한다.

자료 조사가 부족한 것 같아서 더 찾기도 하고, 이것보다 좋은 것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 찾기도 하고, 하다못해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부리고도 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성향으로는 '이 정도면 됐다'라는 확신이 여간해서는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마감, 계약일 같은 공식적 일정이 엉덩이를 걷어차서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일해라!'라고 하기 전까지 미루고 또 미룬다. 몸은 한없이 게으르게 늘어져있지만, 머릿속은 수백 가지 꿍꿍이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으니, 누워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이런 내가 태극권 수련을 9년째 꾸준히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직장인이 아침에 눈 떠서 '오늘 회사 갈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출근하듯이, 태극권 수련도 눈 뜨면 그냥 출근하듯 간다. 


태극권을 출근하듯 9년째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이유 덕분이다.

첫째는 더 이상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태극권 수련을 꾸준히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워낙 이런저런 호기심이 많아서, 시도해 보는 것이 많다 보니 안 맞다 싶으면 금방 그만두는 것도 많다. 대신 내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인연 닿는 데까지는 보통 2-3년 정도는 매일 꾸준히 한다. 수영, 요가, 필라테스, 다른 기수련 등등.

그러다 태극권의 인연이 닿았고, 지금 관장님 밑에서 태극권 수련을 꾸준히 하면 움직이는 명상으로서 나의 명상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새벽 태극권 수련은 고정 일과로 챙겨두어, 내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있지 않은 한 지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둘째, 태극권을 혼자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하는 바가 있어 태극권 수련을 하더라도, 9년 차가 되니 가끔 꾀를 부리고 싶은 게으른 날이 생긴다. 그래도 7-8년 차 수련할 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수련을 했다면, '아, 오늘 아침은 진짜 가기 싫네.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분명 들었을 날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이 되면 출근하듯 나가기 때문에 지금껏 지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태극권 수련을 지속해서 얻은 효과가 뭘까?

태극권 수련 역시 명상 진척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 얻은 효과가 크다. 명상 진척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20년 이상의 명상 수련 이야기' 브런치 매거진에 올리고 있으니 여기서는 넘어가겠다.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었을까?

이건 애매하다. 태극권 수련을 하루 한 시간 남짓 하는데 비해, 흐트러진 생활 습관이 20여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양생을 목적으로 하는 기, 내공 수련 쪽에서 그런 말을 한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갈수록 커다란 폭포수를 따라 끝없이 아래로 내려갈 뿐인데 양생을 위한 수련을 하며, 작은 보트를 타고 그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려 한다고. 에너지 통합을 하며 그 보트의 크기를 키우고, 거슬러 오르는 힘이 더 세지면 더 많이 오를 수 있을 테다. 그런 폭포수를 따라 떠내려갈 때, 보트를 타고 현상 유지만 해도 엄청 대단한 것 아닌가? 실제로는 그러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서 나의 상황을 보자면, 당연히 9년 전보다는 덜 쌩쌩하다. 자연스레 누구나 겪는 노화도 점점 진행되고 있고, 나이가 들면 건강검진에서 주의하라는 항목들이 늘어나 신경이 조금 더 쓰인다. 그렇지만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활용하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거기에는 태극권이 기여한 바도 분명 있지 않을까? (이건 평행우주에 사는 두 명의 내가 같은 시간을 태극권을 하며/ 안 하며 동시에 살아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은 이상, 어떻게 다른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확실하게 효과를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가족 관계가 근원적으로 좋아졌다는 점이다. 가족끼리 함께 태극권을 해서 그럴 것이다. 이 문장만 보면, 마치 원래 화목한 집안에서 다 같이 손잡고 태극권 하러 다니는 것 같지만, 태극권을 시작할 당시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이 부분은 내 삶,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에서 내면 에너지가 통합되는 과정과 깊이 닿아있기 때문에 짧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른 글에서 계속 조금씩 풀어낼 것이다.) 불안과 열등감이 많고 분노조절을 못해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가족 구성원 때문에, 이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서로 안 볼 수 있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근원적 가족 갈등의 경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바뀌길 바라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태극권을 비롯해서 명상 수련을 오래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결국 그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내면 에너지를 넘겨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할 계기인 경우가 많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그 사람이 잘했다가 아니라 내가 그 단계를 넘어서면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변하기도 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제부터 그 문제의 책임은 그 사람이 고스란히 지게 되니까.) 아주 일상적인 말로 풀자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상대가 바뀐다'인데, 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잘못은 저 사람이 하고, 고통은 내가 받는데 왜 내가 바뀌어야 하나!! 억울하고 화가 나니까. 


우리 가족이 태극권을 다 같이 하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원래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가서 마음 수양이라도 해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역시나 스스로 먼저 태극권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이 고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라도 편하고, 좀 더 내면의 힘이라도 길러볼 요량으로 태극권에 등록했다. 그러자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얼른 따라 등록했다. 지금은 그때 문제를 일으키던 모습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열등한 그림자 에너지라는 것을 안다. 그림자 에너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만 잘라내어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기도 함께 통합되고 싶어 해서, 누군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태극권이니 초기에는, 그림자 에너지가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면 수련원에서도 싸움을 일으킬 정도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4년 정도 지나자 관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 당시에 그 정도 성과에 고무되어 글을 쓰려했는데, 재미있게도 그 글을 쓰려던 마음을 먹은 날 또다시 다툼이 일었다. 하지만 4년 전에 비해 다툼은 금방 잦아들고, 그 이후에는 태극권 시작할 초기보다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관계가 좋아졌다.


그로 인해 일상의 질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그림자 통합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 단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과제가 있긴 했다. 그리고 그림자 에너지는 특정한 누군가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 순간 가장 어두운 사람을 통해 수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내며 문제를 일으켰다. 그렇다고 매일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평온한 날들이 쭈욱 지속되다가, 한 단계 더 큰 차원으로 넘어서야 할 때 지독한 문제들이 나타나는 형태였다. 그 과제를 풀어 넘어서면 또 한동안 더 평화로운 날들이 지속되었다. 즉, 단계마다 미션의 난이도는 높아질 수는 있지만, 일상적 삶의 수준은 훨씬 높아졌다.


태극권을 꾸준히 하면 무의식 정화가 된다고 한다. 그 말을 그 자체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온전한 통합을 이루지 않은 사람들이 무의식 정화의 순간을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냥 정화를 하면서, 이게 정화가 되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지속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가 자신의 삶이 바뀐 지점이 있으면, 정화의 효과를 확인하게 된다.


솔직히 태극권을 하는 것만으로 무의식 정화가 된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림자 에너지를 드러내며 가장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마저도 꾸준히 태극권을 하며 엄청나게 바뀐 것을 보며, 지금은 태극권이 무의식 정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온전한 통합을 이루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정화가 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테다.)




그럼, 가족 갈등이 해결되고 무의식 정화 효과 이외에 게으른 완벽주의자로서 태극권을 하며 또 얻은 효과가 있을까?

난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어쨌든 몸을 움직이고 일상생활에서 물리적 실천을 지속한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너무 거기에 매몰되지 말도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천력이 더욱 떨어진다. 실천력도 근육 같아서, 쓸수록 강해지고 안 쓸수록 퇴화되는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는 일단 이불 밖으로 나와서 태극권이라도 한다. 태극권을 하면서도, '아, 지금 태극권이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 좋구나.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겠다.' 란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순간에는 머릿속의 잡생각을 일시에 흐트러뜨리면서 순간에 몰입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다. 그 순간들이 분명, 끊임없이 생각 속에 매몰되고 있는 흐름을 끊어주었을 것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글이 있다.

매일 일기를 쓰면 인생이 달라지고, 10년 간 일기를 쓰면 이미 그 자체로 뭔가를 이룬 거라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로서 계속 미루는 일들이 많아지고, 너무 쌓여서 엄두가 나지 않을 때,

뒤를 돌아보아 그래도 9년째 태극권을 실천해 왔다는 실행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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