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태극권 수련을 하고 있는 곳에서는 각자 개별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오늘의 진도를 순서대로 수련하면 된다. 즉,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태극권 수련을 하고 있어도 주변과 교류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원하면 할 수는 있지만, 그럴 일이 많지는 않다.)
5년 차 수련을 하던 어느 날, 딱 한 번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지금은 그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해를 많이 가리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수련원 창문으로 아침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참 수련을 하다가 다음 동작을 위해 해도 보고 자세도 가다듬을 겸 유리창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눈앞에 뭔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유리에 쿵 부딪힌 것 같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다, 뭔가 있나 밖을 얼핏 살펴봤더니 아무것도 없는 듯해서 잘못 본 줄 알았다.
잘못 봤다고 넘기기엔 좀 미심쩍어서, 이번에는 제대로 살펴보기로 했다. 수련원 건물 밖에 테라스처럼 둘러쳐진 공간이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가보았더니, 유리창 바로 아래 위치에 날개는 다 접히고 푹 고꾸라진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조그만 몸피의 새를 나는 다 참새로 알고 있어서 그렇게 이 에피소드를 공유했더니,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상황을 조사하는 분들이 그 새는 '노랑턱멧새'라고 알려주셨다. 졸지에 노랑턱멧새의 유리창 충돌 사고 현장의 목격자가 됐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노랑턱멧새 주변엔 깃털이 생각보다 많이 빠져 있었다. 죽은 게 아닐까 싶었다. 잠시 후에 희미한 움직임이 보였다. 스스로 일어날 힘은 이미 보이지 않았는데, 그대로 두면 조만간 까마귀가 날아올 판이었다. 안 그래도 그 건물은 가끔 까마귀들이 단체조회를 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패싸움을 하기도 하는 건물이었다.
일단 쓰러진 친구를 안으로 들여오기로 했다. 다들 태극권 수련을 멈추고, 노랑턱멧새를 챙겼다. 한 명이 물 접시를 가져올 동안, 다른 사람이 신문지에 새를 올려 들여왔다. 물을 먹이려 했는데,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 스스로 물을 마시지는 못했다. 부리에 조금씩 넣어줬더니 부르르 털었다. 더 이상 물이 필요 없다는 신호인가 싶었는데, 한 번에 흘려들어오는 물이 너무 많다는 신호였다. 조금씩 흘려주면 부리를 딱딱거리며 물을 찾았다.
난 새가 토하는 걸 처음 봤다. 워낙 작은 새가 토하다 보니 양도 아주 작은 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었다. 부리로 물을 흘려주면, 접시 위의 물 표면에 노랑턱멧새가 토해낸 노란 물이 무늬를 그리며 퍼졌다. 그래도 부리를 딱딱거릴 때마다 물을 조금씩 흘려줬더니, 이내 물을 잘 마셨다.
다행히 어디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대로 뒀다간 까마귀밥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집으로 데려왔다. 제대로 몸을 가눌 힘은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이 어디론가 잡혀간다는 건 알았던 것 같다. 집에 데려올 때까지 30분이 안 걸린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힘없이 퍼드득대어 깃털이 엄청 빠졌다. 결국 포기한 듯 비닐봉지에 싸인 채로 내 손바닥 위에 앉았다.
집에 들어올 때, 빈 박스를 하나 주워다 노랑턱멧새는 그 안에 내려놓았다. 다시 물도 먹이고 방가루도 좀 뿌려주고, 추울까 봐 신문지로 위는 덮어주며 안정을 취하길 바랐다.
뭐, 하루 정도 쉬고 회복하면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집 식구들이 동물과 친하진 않은데, 그래도 잠깐 눈 마주치고 챙겼다고 온 식구들이 10분마다 베란다를 번갈아가며 살펴봤다. 그 모습이 재밌었다.
10분마다 베란다를 들여다보는 게 새를 너무 귀찮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 한 30분 정도 지나자 노랑턱멧새는 베란다 이곳저곳을 퍼드득 거리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으론 '지금 저렇게 다친 상태로 나가면 까마귀 밥이 될 확률이 높으니, 하루 이틀 정도 쉬었다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이었다. 노랑턱멧새 입장에서는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잡혀왔으니,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나갈 틈을 찾느라 베란다 벽과 유리 곳곳을 계속 몸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빨리 들여다보지 않고, 하루 정도 쉬라며 관심을 꺼주는 배려를 했다면,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더 지쳤을 것이다.
문을 열어주자 두 번 푸드덕거리고 주저앉다가, 세 번째에 탄력을 받아 또 순식간에 날아갔다. 나가는 순간을 담아놓고 싶었는데, 너무 순간이라 놓쳤다. 유리에 부딪히는 것보다는 덜했지만, 나가는 것도 빨랐다. 그 짧은 시간에도 털이 많이 빠질 정도로 충격이 컸던 것 같은데, 저렇게 뒤도 안 보고 날아가다가 다른 유리창에 부딪히지나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잠깐 동안 인연을 맺었지만, 그래도 힘내서 살아서 날아가니 기쁘고 고마웠다.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응급처치를 했는데 그래도 자기 힘으로 버텨서 살아서 날아가주었으니.
이 이야기를 온라인 다른 공간에 공유했더니, 환경스페셜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마 유리창 조류 충돌 사례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준비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답을 하지는 않았다. 일단, 당시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은 종영된 지 한참이라 방송국을 사칭하는 경우라는 생각을 해서였다. (사칭은 아니었던 게 그로부터 몇 달 후 새로운 버전의 환경스페셜은 방영되었고, 유리창 조류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칭이 아니라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유리창이 조류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고, 내가 봐도 헷갈리는 유리 건물들은 문제가 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수련원이 있던 건물은 창틀과 새시의 색이 뚜렷이 구분이 되고, 태극권과 관련한 글자들도 붙어 있어 새들이 오해할만한 건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9년째 수련을 해오면서, 그렇게 유리창에 부딪힌 새는 그 친구가 유일했다.
아마 그날 그 친구는 내 눈에 띄어 물 한 잔 얻어마실 인연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