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밝혔다시피, 태극권을 수련하는 곳에 따라 전체 동작을 한꺼번에 배우는지, 아니면 한 동작씩 누적해서 배우는지 차이가 있다.
내가 수련하는 곳에서 태극권 108식을 다 익히는 데는 최소 1년 3개월에서 1년 6개월이 걸린다. 물론 결석 안 하고 매일 와서 수련했다는 걸 전제로.
새로운 동작 익히는 걸 버거워하면, 연속된 동작을 좀 더 잘게 나누어 배우기 때문에 이 차이가 생긴다. 보통의 운동 신경으로 성실히 배우면 1년 3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그러고 나면, 1-2개월은 지금껏 배운 108식을 연속해서 수련하며, 중간중간 잘못된 동작을 바로잡는다.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태극권을 하면서 힘을 빼고 단전에 집중한 채로 동작이 이어지는 것을 연습하게 된다. 같은 동작을 꾸준히 계속하면서, 집중을 하다 보면 몸 안의 기혈 흐름의 변화라든지,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작용 때문에 수련 반응들이 나타나게 된다. 태극권 역시 움직이는 명상이기 때문에, 명상과 정화와 관련한 반응들도 나타난다.
반응은 수련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르다. 스스로 정화와 명상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 깊은 반응, 더 빠른 반응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운동 효과 위주로 태극권을 수련하게 된다. 그래도 의식하지 않더라도 태극권 108식을 성실하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정화 효과는 나타난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태극권만 평생 수련해도 되지만 그것만 하다 보면 좀 지겹기도 하고, 또 다른 움직임을 쓰면 기혈 작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이후에 새로운 진도를 나간다.
보통 상대적으로 젊은 운동신경을 가진 사람들은 태극도, 태극검, 태극도 2의 순서대로 진도를 나가고, 조금 더 나이 드신 분들은 보다 건강에 활용성이 높은 대안기공을 배운다.
태극권이 정적이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꾸준히 하기에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태극검이나 태극도를 배울 때면 훨씬 흥미를 느끼곤 한다.
태극도, 태극검, 태극도 2를 배우는데 각각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조금 더 걸린 것도, 덜 걸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빨리 '진도 빼기'가 목적이라면 이렇게 배우는 방식이 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수련하는 곳에서는 모든 진도가 누적이 된다.
그래서 태극권 + 태극도/ 태극권 + 태극도 + 태극검/ 태극권 + 태극도 + 태극검 + 태극도 2
이런 식으로 계속 누적이 되니, 완전히 소화가 되지 않았을 때 새로운 진도 나가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리고 중간중간 좀 짧게 배울 수 있는 무당파 기공류를 배운다. 이 역시 앞에 배운 진도에 누적해서 매일 수련을 하게 된다. 그래서 첫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극권을 등록해도, 3-4년 지나면 지금껏 배운 것을 매일 수련하려면 하루에 3-4시간 수련을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의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배운 진도를 요일별로 번갈아가며 나누어 수련을 지속한다. 그래도 태극권 108식은 매일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배우고 나서 가장 뿌듯했던 건, 태극도 2와 무당파 기공 중 하나인 태을유용공이란 것이었다. 태극도 2는 상대적으로 왼손으로 칼을 쓰는 동작이 많아서, 오른손잡이가 배우려면 좀 낯설고 어렵다. 우리가 왼손을 이 정도로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확실히 일상에서 왼손의 순발력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 그리고 꽤 멋있다.
태을유용공은 근력, 코어 중심, 유연성 등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동작도 상대적으로 더 복잡해서 배우기가 가장 어려웠다. 대신 이 동작하고 있으면 그럴싸해 보인다.
이 둘을 배우려면 그 앞에 있는 다른 진도를 다 끝내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관장님 제자 중에도 여기까지 다 배운 사람이 몇 명 없다.
사실 이 단계까지 있는 줄도 모르고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태반인 데다, 오래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굳이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배운 것만 매일 하는 것도 버겁다면서) 더 숫자가 적을 테다.
태극도 2와 태을유용공을 처음 배울 때, 관장님께서 굉장히 커다란 보물을 내어 보이듯 가르쳐주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는 움직이는 명상의 연장선상에서 수련을 통해 닿고자 하는 바가 있어 지속하고 있을 뿐, 태극권이나 기공 등을 마스터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그저 매일 꾸준히 배우다 보니 여기까지 진도가 나가게 된 것이다.
다만 관장님이 굉장히 귀하게 배운 건 맞다. 하나를 배우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중국에서 무당파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잘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꼭 이 수련들이 모두 필요할까?
이 부분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았다.
관장님은 당신이 수련하던 초창기에 태극권만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명상과 기혈 반응의 진척을 태극검을 하면서 이뤘기 때문에, 각각의 진도는 그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동작을 막 끝내고 잠시 멈춰서 고요히 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다르긴 하다.
평소 수련을 할 때, 태을유용공이 끝나면 '불권'이란 것도 연속해서 하는데,
그렇게 이어서 수련을 하면 태극권만 할 때와는 달리 내면 아주 깊은 곳에 강한 집중력으로 닿을 수도 있다.
분명 집중과 내면의 차이가 있긴 한데, 나는 아직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그걸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이 수련들의 개별적 효과를 좀 더 명확히 얘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상에서 정화를 비롯하여 이 모든 수련들을 다 하고 있었더니, 명상의 진척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