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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Feb 16. 2024

태극권과 수영의 공통점

예전에 어떤 수영 강사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수영의 최대 장점이 뭔 줄 아세요?"

당시 수영으로 등도 좀 펴지고, 몸도 좀 탄탄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효과를 보는 중이었으므로, 그런 방면에서 뭔가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자유형이 여전히 완전히 트이지 않아서, 워밍업 자유형 200m를 돌면 그날 수업용 체력을 완전히 소모한 것 같아서, 혹시 이런 걸 두고 체력 증진과 유산소의 효과라고 하진 않겠지 싶어서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이런저런 거 다 떠나서, 수영은 나이 들어서도 끝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오호. 수영장에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시는 건 당연하게 생각했어도,

다른 운동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었다.


그러고 보니 태극권도 똑같은 장점이 있다.

나이 들어서도 끝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

그래서 생각해 봤더니, 태극권과 수영은 그 외에도 공통점이 몇 가지 더 있었다.


첫째.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은 운동이라는 것.


사실 다른 운동에 있어서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유독 태극권에 대한 오해가 있어하는 말이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운동을 시작할수록 머리로 생각하는 동작을 몸으로 구현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태극권은 보통 나이가 들어서야 시작하는 운동으로 인식한다.


아무래도 태극권이 무리 없이 근력도 길러주고, 제대로 수련한다면 양생에도 도움이 되니 노년기의 건강에 좋은 운동이라는 인식은 있다. 그렇다고 꼭 나이 들어 시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찍 시작할수록 더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 아니, 수련법이다. 


많은 무술들의 취지는 정신과 체력을 함께 단련하는 것이다.

후대로 넘어오면서, 겉모습의 체력이나 대회에 치중하는 경우도 있고, 수련하는 사람의 정신적 그릇이 무술의 기교를 따라가지 못해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수련을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과 체력을 함께 단련하는 것을 추구한다.


태극권도 마찬가지인데, 겉으로 볼 때는 느릿느릿 비슷한 동작만 반복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중심을 잡고 정신 수련을 함께하다 보면 어떤 내면의 작용이 일어난다. 기 수련으로서의 변화는 물론이고, 정신적 차원의 변화도 일어난다.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할 때, 변화의 끝이 더 멀리 닿을 수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이 글을 보는 시점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젊은 날이다.)


둘째. 초보는 진짜 힘들고, 고수는 힘 빼고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수영과 태극권의 핵심은 힘 빼기다.

수영할 때 더 뼈저리게 느낀다. 서 있을 때 힘을 빼는 것도 내 마음대로 잘 안되는데, 물에 엎드려서 팔다리, 코어 무게중심, 박자 등을 신경 쓰려하다 보면 어딘가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훨씬 힘들고 점점 몸은 물에 가라앉는다.


태극권도 의외로 제대로 하려 하면 초보 때 상당히 힘이 든 운동이다.

기마자세를 유지하며, 체중을 발 뒤꿈치 뒤로 두면서 몸의 무게중심을 움직일 때마다 바꿔줘야 한다. 그리고 태극권 동작 중에 오른손, 왼손, 발의 동작이 각각 다른 경우가 많은데, 동시에 다른 동작들을 하면서 그 동작이 끝나는 순간에는 타이밍 맞게 다 같이 다음 동작 준비 단계에서 끝나야 한다. 


몸에 익지 않을 때는 상당히 헷갈리며, 오른손을 신경 쓰다 보면 왼손 동작을 잊어버리고 있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 손을 신경 쓰다 보면 발의 동작과 타이밍이 안 맞을 때도 있다. 간신히 손, 발의 타이밍을 맞췄다 싶으면 무게중심이나 기마자세가 흐트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신경 써서 해냈다 싶으면, 어깨에 또 힘이 들어가 있다.


수영이나 태극권이나, 힘 빼는 맛을 알려면 평균적으로 4년 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물론 개인차가 있으니 더 빠를 수도, 더 느릴 수도 있다. 다만, 힘 빼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하려 한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매일 하다 보면 조금씩 힘이 빠져있다.

수영을 2년 정도 배웠을 때였다.

어쩌다 보니 기존 멤버들과 1년 이상 진도가 차이나는 반에서 함께 수업을 하게 되었다. 수영 1,2년 차에 1년 진도의 차이는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나도 매일 가지만, 다른 멤버들도 매일 수영을 하니까. 게다가 수영을 원체 어렵게 배운 터라 그 반에 있으면, 맨 뒤에 따라다니기도 너무 힘들고, 맨날 동작도 다 틀려서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반에서 수영 강습을 듣게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수영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안된 초보자와 나를 비교해 보더니 그래도 물에 좀 더 오래 들어갔던 티는 난다고 했다. 힘이 조금 더 빠져있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수영을 꾸준히 한 건 아니어서 여전히 수영은 어렵지만, 매일 수영장 물에서 수업받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셋째. 수영과 태극권은 움직이는 명상이다.


태극권은 미리 정해진 움직임을 익혀서 연결해서 한다.

그 움직임이 24 동작으로 구성되면 24식, 42 동작이면 42식, 108 동작이면 108 식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한 동작이 딱 하나의 움직임으로 되는 건 아니고, 약간 이어지는 동작의 흐름이 각각 명칭이 있긴 하다. 그런 명칭이 24개, 42개, 108개 있다. (108식을 하다 보면 중간에 반복되는 동작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정확히는 108개의 명칭은 아니다.)


태극권 도장의 방식에 따라, 첫날부터 전체 동작을 다 같이 따라 하는 경우도 있고, 한 동작씩 누적해서 배우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연결된 움직임을 다 익혔다고 가정하고, 매일 그 동작을 반복할 때는 무엇을 하나. 지금 내가 수련하는 곳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까지 동작들을 익히고, 동작이 다 익으면 단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만 메타적으로 바라보면서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니 움직이는 명상이다.


(실제로는 매일의 집중도에 따라, 딴생각을 하면서도 몸이 저절로 108식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다음 동작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뭐였더라? 떠올리면서 하기도 한다. 그래도 제대로 집중하며 하는 날은, 더 이상 다음 동작에 신경 쓰지 않으며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만 챙긴다.)


수영은 아직 저렇게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닿지 못해 내게는 명상이 아니지만, 예전에 수영을 움직이는 명상으로 여기던 지인이 있었다. 물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과 차단되어 물과 자신만의 고요한 세상에서 유유히 움직이는 게 참으로 좋다고 했다. 내가 그 느낌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어떤 느낌일지 예상은 된다.


수영도 좋고, 태극권도 좋고, 다른 방식도 좋으니 움직이는 명상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 더 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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