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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Oct 09. 2023

특히 가까운 인간관계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면...

혼술, 혼밥, 혼여행... 혼족, 혼삶.

갈수록 혼자서 뭔가를 하기에 편리해지는 세상이고,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사회적 딴지도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을 기피하지는 아니하되, 개인적 볼일 차원에서 간단히 밥 먹고, 쇼핑하고, 영화 보는 것 정도는 혼자 하는 게 훨씬 편하다. 늘 호기심이 넘쳐 배울 것, 알아볼 것, 할 것이 넘쳐나기에 혼자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온다. 유통기한이 있는 관계여서 일정 기간만 참으면 되는 관계, 많은 비중을 차지하더라도 결국 남이기에 끊어낼 수 있는 관계라면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정말 가까운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관계라면 상당히 답답해진다. 마음 같아서는 관계로부터 오는 이런 문제들을 간단히 싹둑 끊어내고 산뜻하게 혼삶을 즐기고 싶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 문제들을 그저 끊어내고 피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든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이야기를 어떤 동화책에서 본 것 같고, 일러스트로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미지도 얼핏 기억이 나는데, 그 출처는 결국 다시 못 찾았다. (불교 우화라고도 하는데,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다.)     




어떤 욕심 많고, 나쁜 짓만 일삼던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갔단다. 그런데 지옥에서도 반성은커녕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게 너무나 억울해 또 죽을 지경이었다. 어찌나 서글프게 울고 억울해하는지, 누가 들으면 진짜 이곳에 잘못 떨어진 줄 알 정도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너무나 억울하니,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했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생겨 인간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살다 오겠노라고.      


하는 짓을 보면 뻔뻔하기 짝이 없지만,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하늘에서 아주 가느다란 실 하나가 내려왔다. 그 실을 붙들면 다시 한번 올라가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어찌나 실이 가늘고 얇은지 한 명도 지탱하기 힘들어 보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인공은 실을 꽉 쥐었는데, 그때 실이 크게 휘청거렸다. 알고 보니 지옥 아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그 실을 붙들고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그대로 두면 실이 끊어질 게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대로 허망하게 다시 지옥으로 굴러 떨어질 수는 없었다. 소원을 빌었던 자는 있는 힘껏 밧줄에 달려드는 손아귀를 걷어찼다. 지옥의 다른 이들도 절박하긴 만만치 않았던지, 한 명이 나가떨어지면 다른 곳에서 또 몰려와 실을 잡았다.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그 손들을 걷어차도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결국 실이 툭 끊어졌다.     


그때 위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착하게 살겠다더니, 그 기회마저 걷어차 버렸구나.”     




이 이야기를 아주 예전에 본 것 같은데, 태극권을 계기로 본격적인 명상 수행을 하면서부터는 그냥 흘려버릴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내 주변의 귀찮아 보이는 관계의 문제들을 그대로 끊어버리고 피해버리려 하면, 내게 주어진 오늘의 실, 기회가 그대로 끊어져 버릴 것 같아서.     



실제로 가족 사이의 문제는 그랬다. 

애초에 신선놀음을 하기 위해 태극권 수련을 가족들이 시작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사자는 당시의 자신이 구체적으로 특정되길 원치 않기에 그냥 가족 구성원을 A, B, C의 형태로 표현하려 한다.)     



당시 B는 정서적인 문제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오죽하면 직장의 지인들도 월급을 그대로 줄 테니 회사에 나오지만 말았으면 좋겠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불안과 화를 그저 공격적으로 던져놓을 뿐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전혀 몰랐다. 마음 같아선 B가 명상 수련이라도 배워서, 감정을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여유 있게 처리할 수 있길 기대했다. 물론 B가 자발적으로 명상 수련을 하러 가는 일은 없었다. 상식 수준에서 많이 벗어난 행동들을 하는 모습에서 점점 어떤 방향의 전문적 도움이 필요할지 감을 잡기도 어려웠다. 더욱 큰 문제는 본인이 그런 도움을 활용할 의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C 역시 처음엔 선뜻 수련을 시작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예전에 다른 수련을 배워온 것을 아침마다 일부 해오기도 했고, 아침에 출근 준비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담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B로 인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일단 B가 바뀌면 제일 좋겠지만, 많은 경우 그러하듯 문제를 일으키는 본인은 바뀔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이런 스트레스 상황을 버틸 힘이 필요해서 다른 가족들이 태극권 수련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30분이라도 시간을 내기로 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이왕 시간을 낸 것 1시간 이상 제대로 하기로 했다.     



신기했던 건 그러자 B가 곧바로 자신도 같이 등록을 하겠다고 했다. 그토록 다른 가족들이 수련을 시작하라고 했을 땐 온갖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마 가족들 중 자기만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당시 B가 일으키는 문제는 다른 가족들이 무의식에서 끊어버린 그림자 에너지가 자신도 통합해서 데리고 가라는 신호였다. B를 통해 밧줄을 필사적으로 붙드는 건 사실 다른 가족들의 그림자 에너지였던 거다.       




이렇게 얼떨결에 가족이 함께 수련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가족이 함께 운동하는 화목한 모습’은 아니었다. B와 C는 초기에 의견충돌이 잦았다. 운동은 가족이 ‘매스게임’처럼 다 같이 구령에 맞춰 일정 속도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의 속도에 맞추길 고집부렸다. 그냥 무시하면 될 것 같지만, 당시 B가 보이는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운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당황스럽게 했고, 집 밖의 행동에서는 더더욱 주변이 의식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C는 이왕 어렵게 시간을 낸 수련 기회이니, 원래 태극권 수련 취지에 맞게 기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박자에 맞춰 천천히 자기 속도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겉으로 보기엔 사소한 운동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인 것 같지만, 사실 무의식에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족이 다 같이 해야 한다는 B의 의견엔 자신만 덩그러니 뒤처질 것에 대한 두려움, 열등감이 주위에 대한 통제 의식으로 나타났다. C는 B가 일으킨 문제들로 쌓인 게 많았기에 여기서 또 B를 위해 배려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었다. 즉, C는 여기서도 B를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그림자 에너지를 끊어버리고 혼자만 나아가려 했다. 그럴수록 그림자 에너지는 자신도 함께 데려가길 B를 통해 폭력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무의식의 문제들이 서로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다 보니, 가족이 함께 수련을 하는 시간엔 상당히 불편한 날들을 초반엔 많이 보냈다.      



당시엔 정말 나 혼자 열심히 배우고픈 마음이 정말 컸다. 단순히 수련 정도라면 시간을 옮긴다든지, 다른 수련을 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혼자 해도 됐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명료하진 않아도) 이 문제를 혼자 피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단전에 더 집중하려 하고, 화가 날 때마다 정화를 더 하려 하며 수련을 계속했다. 


     



그림자까지 내면에너지에 통합하는 수련의 과정에서 화에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연습은 꽤 중요하다. (이건 다음 글에서 더 다루겠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머리로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다독이는 일은 쉽지 않다. 화를 내지 않는 여러 방법들을 활용해 보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건 오늘 글에서 소개한 밧줄 우화였다.      



내가 그토록 밧줄에서 떼어내려 했던 내 인생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들, 특히 진짜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사실 나의 내면의 열등한 에너지, 그림자가 초래한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의 본능은 흩어져 있던 나의 에너지들을 더 높이 통합하여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그림자 에너지를 걷어차려 할수록 더 끈덕지고 절박하게 들러붙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이를 어떻게 하면 내 안으로 통합할 수 있나로 고민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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