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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Oct 09. 2023

태극권 배우기의 시작과 끝- 힘 빼기

매일 태극권을 하다 보면 그동안 얼마나 발전이 있는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신규 회원을 보고, 첫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 나의 시작도 저랬지’ 깨닫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태극권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힘 빼기다. 동작이 몸에 익지 않아 긴장을 하게 마련이니 처음 시작할 때 온몸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팔, 다리, 어깨 등 몸의 대부분의 부위는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을 뿐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이게 된다고?’하는 의문과 끝없는 무력감을 안겨준 동작(?)이 있다. 어깨에 힘을 완전히 빼고 날갯죽지만 움직여서 팔을 들어 올리라는 동작이다. 날갯죽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좀 움직여보려면 어깨에 힘이 같이 들어간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처음부터 이 동작이 잘 되지는 않는다. 관장님도 처음부터 이 동작의 완성형을 기대하고 가르치시진 않는다. 다만 앞으로 이 동작이 가능하게끔 지향하며 매일 수련하라는 거다.     


참고로 이 동작을 처음부터 해 낸 사람을 딱 한 명 봤는데, 전직 운동선수여서 몸을 쓰는 법을 알던 회원이 있었다. 그 회원은 날개뼈만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역시 다른 부위의 힘을 빼는 건 어려워했다.) 비슷한 차원에서 무용을 하며 몸의 부위별로 힘을 빼며 몸 쓰는 법을 아는 사람들도 가능한 동작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태극권을 배울 땐, 단순히 몸을 쓰는 법을 지향하려고 이 동작을 수련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을 쓰려하지 않고 몸의 힘을 완전히 빼면 날갯죽지만 움직일 수 있다.     




태극권 동작을 정확하게 하려면 사실 상당히 성가시다. 무게중심이 발 뒤꿈치에 제대로 가 있는지,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이 각각 다른 동작을 하면서도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신경 써야 한다. 그러면서 108식의 다음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운동도 정확한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운동들과 달리 태극권이어서 좋았던 점이 있다. 완벽한 동작이 될 때까지 의식적으로 부단히 훈련해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몸에 익혀야 하는 다른 운동들과 달리 태극권은 몸에 익을 때까지 어느 정도 연습을 하면 살짝 기댈만한 구석이 있다. 어느 순간 이상이 되면 기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정확한 동작으로 움직이게 된다. 의식적 나보다, 나도 몰랐던 내면의 나가 수련을 조금 더 이끌어 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점에서 좋다.      


그렇지만 이 부분도 오해의 소지가 많다. 집중력이 좋거나, 예민하게 기감을 느끼는 초보들이 그런 착각을 많이 한다. “아, 진짜 내가 집중했더니 몸이 저절로 이런 동작으로 움직이더라고요.” 이런 경우들을 종종 보는데, 이것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은 몸의 힘을 완전히 뺐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때의 움직임도 기의 흐름보다는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인 것인 경우가 많다. 그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을 뿐.     


태극권에서 기가 저절로 흐른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에 맞는 움직임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108식이나 되는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기가 흐르는 순서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 움직임을 몸에 익히는 것은 기가 흐를 수 있는 길의 물리적인 형체를 잡아두는 것 같다. 이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몸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이면 음, 양의 에너지 흐름이 일어나는 원리인 듯하다. 다만 초보일 때 이 과정을 의식할 수는 없으니, 어쨌든 매일 같은 동작을 하면서 기를 쌓는다.     



그렇게 기의 흐름을 몸에 익혀 두고 움직임에 따라 몸에 힘을 완전히 빼게 되면, 어느 순간 내가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기의 흐름대로 다음 동작이 먼저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경험들을 한다. 그런데 몸의 힘을 어느 정도 빼는 데만도 몇 년 이상이 걸리니, 그 기간 동안 기 수련도 함께 이루어지기에 가능한 경험이다. 


이상적으로는 태극권 108식을 완전히 몸에 익힌 후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경험을 하겠지만, 매 순간마다 내가 힘을 뺄 수 있는 정도, 집중의 정도가 다르니 일정 구간 띄엄띄엄 그런 느낌을 확인한다.  


   

태극권도 여러 변형 버전이 있다. 변형이 되는 적절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변형이 되더라도 원래 태극권 취지에 맞다면, 그 동작을 익힌 후 힘을 빼면 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형태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정말 고수가 아닌 이상, 동작을 하면서 기의 흐름이 끊기는지, 저절로 연결되는지 알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걸 스스로 알 수 있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원래 태극권이 지향하는 점은 그렇다.(고 한다. 내가 수련하는 태극권은 스승님의 스승님이 태극권 전통을 유지하려 한 대만의 스승님으로부터 배워 온 거라 들었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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