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이야기를 한창 하다가 오늘은 외국어 공부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외국어를 넘어서, 내면의 직관을 되살리는 것과 어떻게든 연결이 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다들 걱정하는 건, "그래서 나의 직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식이나 데이터의 단순 소유나 조합으로 가치를 인정받던 직업들은 아마 앞으로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그렇지만, 라이선스 직업들은 라이선스 '제도' 때문에 유지가 될 것이고.)
사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AI가 어디까지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AI의 발전에 사회와 제도, 자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능력을 두 개를 꼽으라면,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유연하게 새로운 것을 배워 변할 수 있는 능력, 데이터 조합이 아닌 영역 (감각, 직관, 내면의 힘, 공감력 등등)의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갖추면 불안하고 흔들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적어도 내면에 중심을 잡으며 그 시기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어는 단순하게 지식을 익혀서 조합할 수 있는 능력에 많이 기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날 단어 외우고, 문법 구조 익히고, 일반적인 상황, 특수한 상황에서 대체로 쓸 수 있는 표현들을 암기하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다만 일정한 수준까지 의사소통이 되기까지 외워야 할 분량이 많으니까 어려운 거지요.
(그리고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성인들은 모국어의 지적 능력이 이미 발달한 상태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기초-중급-고급처럼 단계적으로 나눠져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못 한다고 답답해하기 쉽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언어 수준과 지적 수준의 발달이 비슷하게 가니까, 기초 단계를 충분히 익히고 그 위에 쌓을 수 있는 것이죠.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기초 수준으로 일상 의사소통 수준을 만들고 그 위에 쌓는 것! 여기서 학습 효율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집니다.)
성인이 비슷하게 효과를 보며 공부하려면, 모국어로 하고 싶은 말의 수준을 어린이 동화처럼 제한된 상황으로 한정하여 먼저 몸에 익히고, 그 이후에 성인의 인지 수준에서 하고 싶은 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효율이 많이 높아집니다. 제가 프랑스 어학연수 시절 이 방법의 효과를 크게 체험하기도 했고, 그 경험에 근거해서 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쳤을 때도 성과가 좋았습니다.)
만약 큰 욕심부리지 않고, 특정한 맥락에서 대강의 의사소통을 목표로 한다면, 앞으로는 이런 공부들이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미 번역기, 통번역기 등의 도움으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통번역기 수준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는 통번역기로 100% 대체될 만큼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가 도구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세한 생각, 감정,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인 것이죠.
유난히 외국어 공부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정 공식처럼 A 언어의 표현이 B 언어의 표현에 일대일 대응으로 딱 떨어지길 바라고, 대응의 규칙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별거 아닌 일상적인 상황을 배우는 기초반에서도 유난히 외국어 공부가 어려운 사람들이 묻는 질문들 중에, 사실 예리한 지점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세한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변수들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오히려 전공 분야나 특정 지식을 다루는 어려워 보이는 영어는 우리말로 일대일로 대응이 되기 때문에, 단어 외우는 것만 넘어서면 더 쉽습니다.)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단계까지 빨리 이르기 위해선, 단순한 말인 것 같은데도 문화적으로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 것들은 유연하게 넘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미세한 감정과 사상의 그릇으로 쓰이는 언어를 대할 때는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결국 고도로 훈련된 사람의 역할이 필요할 것 같다. 일상생활이고, 자주 쓰이는 맥락이라면 지금의 통번역기도 충분히 확률적으로 가장 대응이 잘 되는 문장을 매치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나 사상가의 미세한 사유 방식, 아주 미세한 표현에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계약, 협상의 상황에서 외국어로 대응시킬 때는 결국 AI가 선택해서 내보여주는 몇 개 안 되는 조합이 전체 맥락에서 적당한지를 검수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평균적 활용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작가가 활용한 고유한 표현 대응시키기, 맥락에 따라 감춰놓은 뉘앙스가 잘 전달되었는지 등을 감별하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의사소통하는 분야의 통번역 수요는 줄어들지 몰라도, 아주아주 고도의 역할은 남을 것 같습니다.
직업 통번역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외국어 공부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일반적으로 chatGPT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chat GPT의 영어/한국어가 내 의도에 맞는지 정도를 구별하는 능력은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분간 영어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단순하게 외국어 지식을 소유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본 것입니다. AI에 의해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의 차원으로요.
지금부터는 외국어를 하는 동안, 데이터와 지식이 감지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직관과 공감, 내면의 힘 등의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 외국에서 친구가 방문했습니다. 프랑스 어학연수 때 만난 친구라 우리 둘 다 모국어는 전혀 다르지만 만날 때는 프랑스어를 씁니다. 만날 때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군요. 어학연수 다녀온 후에 첫 직장 생활을 하며 휴가 받아 이 친구 고향으로 놀러 간 적이 마지막이었으니까요. 대신 매년 새해가 되면 메일을 주고받는데, 그때가 제가 프랑스어를 활용하는 유일한 순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프랑스어를 많이 잊어버리기도 해서, 이 친구가 방문한다고 했을 때 바로바로 말이 안 나올까 봐 걱정이 좀 됐습니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예전에 이 친구 고향에 갈 때는 사전을 가져갔었는데 ㅎ) 믿는 구석이 있긴 했지만요.
이 친구가 한국에 방문한 동안 3일 정도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가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은 것들은 번역기를 참고하기도 하고, 급하면 영어로 말하면서 대화를 했지만, 놀랍도록 프랑스어가 계속 되살아났습니다. 예전 프랑스 어학연수 때 홈스테이 아줌마가 해준 말인데, "다 잊어버려도 돌아온다. Ça reviendra!" 이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프랑스 어학연수 때 처음 3개월 동안은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해서 꽤 답답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기초를 완전히 몸으로 익힌 후 그다음 단계로 올라갔더니, 그 이후의 성과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습니다. 6개월 만에 지금의 B2 레벨 (그 당시에는 A6 레벨)까지 합격하고, 그 당시 프랑스에서 일상 생활하는 데는 거의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는 휴대폰 하나 해지하려고 해도 미리 서류를 요청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온갖 서류 때문에 관공서에 문의할 일도 많았습니다. 다른 한국인들을 대신해서 대학 입학처에 문의해 주는 일들도 종종 해줬는데 이런 일들에 거의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와 쓰던 말들은 시간이 오래 흘러도 비슷했기에, 점점 몸이 기억하고 되돌아오더군요. 농담을 해도 서로의 유머 코드를 알기 때문에, 전혀 오해하지 않고 바로바로 대화가 통하는 건 감동이었습니다.
만약 이 친구와 함께 할 때, 고도로 발달해서 완벽하게 각자의 모국어를 서로의 모국어로 전달해 줄 수 있는 통역기가 있었다면, 느낌이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문장은 그대로 전달이 된다 한들, 둘 사이에 기계가 한 층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네요. 오히려 둘 다 모국어가 아닌 상황에서 함께 공부했던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에 전달되는 감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성은 내가 몸으로 프랑스어를 익히며 느꼈던 자유로움 속에서 나왔습니다. 친구와의 관계 맺음에 있어 나의 내면의 상태에 따라 그 관계의 질이 달라지는 건 당연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저는 일본어를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의 생존 일본어와 영어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관광만 생각한다면 목적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일본어를 좀 더 자유롭게 한다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의 폭이 훨씬 풍부할 것이고, 버스 타거나 관광지에서 말 걸어오는 현지인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당연한 아쉬움은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제가 언어에 제한을 느낄 때는, 평소에 당연히 돌아가던 생각도 잘 안 돌아가더군요. 일본 여행을 할 때, 머무르던 도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막차가 오후 4시경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같이 갔던 일행이 음료수를 한 통 다 마시고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시골 동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동네에 내려 막차를 보내버리면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일단 원래 도시로 돌아가는 것만을 목표로 했습니다.
돌아오는 두 시간은 모두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참았던 일행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화장실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야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외곽 동네에선 4시에 막차였지만, 어느 정도 도심에 가까워오면 거기선 목적지까지 가는 다른 교통편을 많이 구할 수 있었을 거지요. 번역기로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제가 외국어의 제약에 묶여 있다고 생각할 때는 이런 생각 자체가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가 전혀 모르는 러시아어나 아랍어 통역기만 가지고 거기에 의존해서 돌아다닌다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통역기의 문장을 알아볼 줄은 알아야 저는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외국어를 몸으로 익히고 공부할 때의 기쁨을 가장 크게 느낀 건 캄보디아에 워크캠프를 갔을 때였습니다. 워크캠프 프로젝트 자체가 영어 교육이었기 때문에 사실 영어만 할 줄 알면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캄보디아는 관광에 의존하는 바가 커서 그런지, 관광지를 돌아다니는데 영어가 생각보다 아주 잘 통했습니다. 그전에 멕시코 워크캠프를 갔을 때, 워크캠프 공용어는 영어지만 멕시코 현지에서 생각보다 영어가 너무 안 통해서 당황했던 것과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기 전 캄보디아어를 간단히 배울 수 있는 책을 두 권 준비해서 갔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언어를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고, 꼬불꼬불하게 생긴 그들의 글자를 익히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영어 교육 프로젝트를 하러 가니, 그들의 모국어의 특징은 알아야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캄보디아어 (그들은 크마이어라 부릅니다)의 개괄적 특징, 그리고 꼬부랑글씨에 대한 한국어 발음이 달려 있는 회화책을 준비해서 조금 익혔습니다.
이렇게 약간의 준비를 했던 것이, 캄보디아 워크캠프에 있는 동안 나의 체험의 폭과 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캠프 팀은 취학 전 어린이부터 중, 고등학생까지의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친구들을 처음 보아 낯설지만, 그 친구들도 우리를 처음 보고 낯설어했습니다. 처음엔 친해지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영어 문장에 해당하는 크마이어를 내가 배우려 하자, 아이들은 급격하게 다가오더군요. 자신이 잘 아는 것을 가르쳐 줄 때의 자신감과 기쁨으로 제 발음을 교정해 주며 의기양양해했습니다. 나중엔 너무 친하게 다가와서 힘들 정도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가도, 그 친구들이 숙소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빨대, 풀 등을 엮어서 이것저것 만들어 선물을 주다 못해 자신의 귀한 반지 등도 다 가져와서 이건 마음만 받고 돌려보냈습니다. 제가 몇 마디 하는 크마이어로 동네 사람들과도 친해졌고, 나중에 묵은 호텔에서도 직원들이 더 살갑게 챙겨주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이건 제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와 관심의 표현에 대한 고마운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원래 수업 계획과 달리 그곳의 환경에 맞춰 자연스럽게 흐름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이 친구들은 집에 가지 않고 또 저를 중심으로 놀고 있었습니다. 학교로 쓰던 마당의 진흙 바닥에서, 제가 말하는 크마이어에 해당하는 것들을 그대로 찰흙을 뭉쳐 빚어줬습니다. "악어가 문다"라고 한 마디 익혀서 하면, 이 친구들이 정교하게 악어를 교실 바닥의 찰흙으로 뭉쳐 빚어서 자랑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놀다 보면 다음날 수업 활동을 바꾸어 진행했습니다. 사실 짧은 기간 몇 번 영어 수업 한다고 뭐 그리 영어가 늘고 달라지겠습니까. 그 시간 동안 우리 팀들이 서로 공감한 것들을 활동에 반영해서,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는 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10년 넘게 창의성, 미학에 대한 책을 3000권 넘게 읽으면서, 갈수록 몸으로 체험하는 감각, 경험의 질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창의성 교육이라며 또다시 교실에 앉아서 발상법을 훈련하고 있을게 아니라, 온몸이 자석처럼 주변의 감각 정보를 끌어들이고 내면의 힘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하듯 몇 시간씩 준비해서 되지는 않습니다. 삶의 매 순간 경험을 자극하여 창의적 체질로 바꿔야 합니다. 외국어 공부 역시 경험을 자극할 수 있게 활용할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자유로운 내적 직관이 반짝이며, 자신만의 방법, 자신만의 길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따르면, 불안하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