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월 moon Mar 05. 2024

피아노치는남자, 책읽는여자

#강박증남편과욱하는아내 #그럼에도결혼을장려합니다

제목을 예쁘게 정해보고 싶었다.

우리 부부가 사는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결심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왜 글은 쓴다고 생각하고 메모를 해두면, 실제 글자로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기록해두고 싶다고 생각한 건 올해가 시작할 무렵이다.

올해로 14년 차 부부로 살아온 우리의 이야기는 돌아보면 지극히 평범하다.

이렇다 할 특별함은 없지만, 일상이 그렇지 않은가?

일상은 일상일 뿐. 흘러가는 시간과 우리의 이야기들은 행복하고 소소하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시어머니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힘껏 열심히 곱게 키우시느라 피아노를 어릴 적부터 가르치셨다.

남편은 피아노라는 악기와 피아노를 연주할 때 느끼는 기쁨을 사랑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전공을 바꿀까 했을 정도.

전공을 바꾸는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지금까지도 남편은 피아노를 친다.

교회에서는 새벽기도 반주를 일주일에 두 번 하고 있는데, 덕분에 지금도 연습을 하느라 피아노 연주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우리 집에는 올해 11살, 8살이 된 아들이 둘 있는데, 작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 집에 나와 함께 사는 세 남자는 모두 피아노를 친다.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 치는 남편을 두어서 부럽다고 한다. 어쩜 그렇게 전문가처럼 피아노를 치냐고.

하하하~

우리 부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겸손하게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답하지만, 우리끼리는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부부는 진지함보다는 코미디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편의 연주는 정말 근사하고 멋지다.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그런데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웃음을 참기 힘들다.


추리닝을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얇은 반팔티 하나만 입고, 귀에는 헤드셋을 끼운 채 땀을 흘리면서 집중하느라 아랫입술을 내밀고 건반을 두드린다. 옆에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건반과 피아노 페달을 힘차게 밟는 소리만 난다. 그러다가 가끔 연주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우리끼리  유튜브 계정을 하나 만들자고 할 정도로 멋지게 들린다. 여하튼 연주는 멋지고, 현실은 재미있고.


반면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책이 다양하고 예쁜 그림이 가득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다 읽었는데, 너무 심심할 때 읽는 책이 백과사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 글자를 혼자 깨우쳤다.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도 읽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중고생 시절에 만화책으로 넘어가 그 세계에 발을 들인 뒤, 그곳에서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리기는 했지만...

대학생이 되고서도 7~8년간 독서토론회를 계속해서 할 정도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랬던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때 당시는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읽었다. 좋아서 읽었다기보다는 그냥 읽었다.

글을 많이 읽어서인지 요즘 말하는 문해력은 따로 학습을 통해 얻지 않아도 되었다.

수능 언어영역도 어렵지 않았다. 기출 모의고사 중에서 만점을 받은 때도 있었고, 수능을 두 번 보았는데 (재수했음) 모두 두세 문제를 틀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악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음악 실기평가를 피아노로 한다고 해서 한곡을 따로 무지하게 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악기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지금도 악기를 배우고 싶지는 않다. 인생을 사는 동안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게 멋지다는데...;;


남편은 책을 읽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내가 읽은 책 중 정말 감명을 받거나, 글이 정말 좋은 책은 남편에게도 쉴 새 없이 추천을 하고, 책 이야기를 하는데도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나 다르다.

살면서 더 실감한다. 어쩜 이렇게 다른지.


다음 이야기부터 등장할 테지만, 남편은 강박인가 싶을 정도로 청결과 정리에 예민하다.

나도 나름 직장 생활할 때 정리정돈에 대해 인정을 받았었는데, 남편을 만나니 나는 털털한 여자가 되었다.

또 남편은 여느 남자들과는 다르게 욱하는 모습이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반면 나는 화가 나기 전까지 참고 참다가 한방을 터뜨리는 편이다.






이렇게도 다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결혼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도 14년째 살고 있는 우리 이야기.

할렐루야!


우리 부부가 가끔씩 서로 하는 인사가 있다.


"아이고~ 그동안 같이 사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예예예!!!"


그러고 또 한 번 깔깔깔 웃는다.

비결, 비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의 비결이라면 이것이 답일 것 같다.

같이 숨넘어가게 웃어대는 그 찰나의 순간!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