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장항준을 꿈꾸는, 피아노치는남자
필라테스를 다녀와서 너덜너덜해진 몸을 붙들고, 간신히 척추만 세우고 있던 아침.
아이들이 개학한 후 둘째 날이라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인스타에 간략하게 개학과 새로 시작한 3월의 일상을 남기고 있는데, 핸드폰 알림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 뭐지, 뭐지? 내가 제대로 본 게 맞았나?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적고 있던 글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바로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사실 작년에도 한번 도전했다가 단박에 떨어진 경력이 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입했을 때! 그때부터 진작에 글을 써두었어야 했다는 후회를 가득하면서, 브런치 작가의 문턱을 실감했었다.
그때는 분명 다른 글귀로 시작하는 이메일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문구로 메일이 와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매일 아침 이메일을 열어보던 터였다.
그런데 이메일 문구가 달랐다.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스토리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브런치스토리에 담길 소중한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전날 꿈을 꿨다. 꿈에서도 이메일이 도착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는 물론, 출판사 두 곳에서의 출간 제안이었다. 어지간히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은가 보다 하면서, 누구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워 내 기억에만 남겨두던 중이었다.
정말 되다니, 이게 되다니.
책을 내본 적이 없어서 그 감격은 모르겠다.
편집일을 일 년 정도 해본 적이 있어서, 내가 수없이 읽은 원고가 책으로 예쁘게 나온 그때의 감격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보다 더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기특하다, 나 자신!!
가장 먼저 남편과 친한 친구들에게 내 기쁜 일을 알렸다.
사실 글쓰기에 관심이 크게 없는 이들에게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 주는 마음 하나로 이들은 함께 즐거워하고 내 글을 읽어주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중에 제일은 역시 나랑 같이 사는 피아노 치는 남자인데, 아내가 작가가 되겠다며 책을 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책을 끝없이 읽고, 아이들 글쓰기 수업까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없는 응원을 해주었다.
동시에 그에게도 하나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제2의 장항준.
장항준은 영화감독이다. 솔직히 영화감독이라는 느낌보다는 예능인의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그의 아내는 김은희 작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드라마 작가다. 김은희 작가가 쓰는 시나리오의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본 드라마만 서너 개가 넘는다. 유령, 시그널, 킹덤, 악귀...
김은희 작가의 남편인 장항준 감독의 인생을 "신이 내린 꿀팔자"라고 부른다.
장항준 감독 자신조차 몇몇 방송을 통해 아내의 덕을 보고 사는 것을 맛깔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 집 남자가 그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모티콘이라도 있다면 박장대소하는 표정을 넣고 싶은 순간이다.
피아노 치는 남자, 그가 '신이 내린 꿀팔자'를 꿈꾸고 있다. 또 한 번 우리 부부는 식탁에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도착할 시간이 이미 지났다.
'오늘따라 오래 걸리네' 하고 기다리는 중에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손에 하얗고 예쁜 케이크상자가 들려있다.
"뭐야, 이 케이크는?"
"오늘 축하할 날이잖아?"
"이렇게까지?"
"그럼!! 축하해야지!!"
우리 집 아이들은 무슨 축하인지도 모른채, 케이크라는 사실에 즐거워하면서 온 가족이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피아노 치는 남자는, 자신이 장항준 감독의 인생을 살 준비가 되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내의 카드를 쓸 준비가 되었다면서.
남편의 마음에 고마운 마음만 남기면서 도파민 가득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김은희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나는 나대로 온종일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 기쁘고 신나는 마음이 흘러넘쳤던 건지.
아직도 기쁜 마음이 잔잔히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