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월 moon Mar 06. 2024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피아노치는남자이야기 #정리벽은언제부터 #그럼에도결혼을장려합니다

결혼하고 난 후 5,6년쯤 지나서였을까?

시댁을 가서 밥을 먹고, 과일이나 과자 등의 후식을 먹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느새 보니 아버님이 현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릇을 하나 손에 받치고 서서 과자를 드셨다.


"아니, 아버님 왜 거기서 과자를 드세요?"


"부스러기가 많아서 다 흘러."


크게 소리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깊은 탄성이 울렸다.

'아!!!!!!!'


그리고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생활방식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깨달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외동아들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신 어머님이 첫아들을 낳으시고, 임신의 과정이 너무 힘드셔서 한 아들만 잘 키워내 보기로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과 열심은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에게 부어졌다.


어머님의 본디 깔끔하고, 질서 있는 생활의 모습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기질상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을 좋아하는 아들은 그 안에서 안정감 있게 자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갈 준비를 하고, 학교를 다녀오면 언제나 집은 정리되어 있었다.

옷은 대부분 깨끗하게 세탁되어 정돈된 상태를 마주했고, 집안 곳곳에 널브러진 옷은 거의 목격한 적이 없었다.

집안 바닥에 목적 없이 물건들이 놓아져 있는 때는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오랜 시간 방치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꼭 그 물건의 제자리를 빠르게 찾아주었기 때문에.

가끔 친구들이 놀러 와서 집에서 자유롭게 놀고 집을 떠날 때도, 남편은 마무리 활동으로 모두 정리를 하고 나가도록 했다. (정말 대단하다!)


혼자였기 때문에 외롭기도 했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았다.

혼자 자라면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가정을 꾸리고 이제 시종일관 사람들 틈에서 북적이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그의 모습이 온전히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되었다고 해서 그가 추구하고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동의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이 남자를 이해하기까지 5,6년의 시간이 걸린 것은 분명했다.

사랑해서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아닌 것 같은 허다한 삶의 순간들이 부부에게 있지 않은가.

다름을 더 크게 느끼고, 그것에 아파하면서 결혼이라는 관계를 매듭지으려는 수많은 부부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도 역시 그랬다.

특히 첫 아이를 낳고 기르는 순간은 더없이 그러했다.

우리의 관계, 부부로서의 인연을 매듭짓고 싶은 순간은 우리에게도 진하게 찾아왔다.

남편의 정리강박적인 이 모습은 내가 가장 힘들게 이해한 남편의 한 부분이다.

우리 부부가 다툼을 일으키는 주요 이슈 중 하나다.

남편이라는 한 존재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일상의 순간들이 없었다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놓아 버리는 일이 내게도 일어났을 법하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잘못된 것이라 여겨지는 모습도 긴 호흡으로 잠시 한편에 놓아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피아노 치는 이 남자가 왜 그렇게도 정리와 정돈에 삶의 귀한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 이해하기까지는 결혼 후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궁극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의 정리벽은 나의 현실과 적당히 타협될 필요가 있었다.

지금도 그 타협은 진행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I hate peopl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