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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Sep 15. 2020

여행의 주파수

시그널을 느껴보세요



 “오케이 오늘 QR343편, 보잉 777. 캡틴 이름은 XXX, OOO. 비즈니스석 승객 17명 이코노미 150명. 라이트 로드야. 음... 비즈니스 석에 신혼부부가 타는데 좌석이 떨어져 있어. 이 구역 담당자가 누구지? 다른 승객한테 설명하고 자리 꼭 붙여드려야 해! 이코노미석엔 휠체어 승객 2명, 보호자 없는 어린이 승객 2명이 탈 테니 주의하고. 그리고 청각 장애인이 탈 거야. 절차대로 안내하면 된다. 다들 트레이닝 때 모의훈련해봤지?”     


승무원 브리핑 룸에서는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 할 승객의 정보가 오간다. 당뇨, 휠체어, 특별한 요청 사항 등. 그리고 거의 매 비행에 거동이 불편한 승객이 탑승했던 걸로 기억한다. 시력을 거의 잃었거나 청각을 상실한 승객들도 더러 있었다. 한 구역이 매끈한 백발을 자랑하는 손님들로 가득 차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안 그래도 좁아터져 불편한 이코노미석에 승객들이 몸을 구겨 넣는다. 남보다 두 배로 불편할 게 분명하지만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두렵고 힘들겠지만 새로운 곳으로 탐험을 나선다.



모두가 여행을 꿈꾼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일상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찾아보니 여행에 나그네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나그네 여(旅), 다닐 행(行)을 써 여행이란다. 목적이 있는 떠돌이인 셈이다.


우리는 왜 떠돌이가 되어 떠나려 할까? 무슨 목적인 걸까? 예전에는 여행보다는 떠나는 행위에 더 큰 의미를 두곤 했다. 정해진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지치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제법 건전한 일탈을 꾀한 방법이 나그네가 되어 유람을 떠나는 것이다. 근데 단순한 일탈로 치부하기에 인간은 복잡한 존재였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여행을 계획하고 피곤하고 지쳤어도 기어코 기차에,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디가 불편하거나 아프더라도 나그네가 되어 다니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행은 메마른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경험으로 시야를 넓혀 주고, 일차원적인 쾌락을 부여하기도 하고 또 …… 역할이 너무 많아 역으로 여행이 먼저 나가떨어질 지경이다.


승무원으로 항공사에 근무하던 시절 남들이 밥 먹는 시간보다 많이 비행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비행기를 타는 게 당연하고 무감각해졌다. 눈앞에 펼쳐진 생경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더 이상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비행 브리핑룸에서 사무장이 한 말이 가슴에 날아들었다.     


“비행기 티켓이 얼마인지 알고 있나요? 도하에서 파리로 가는 티켓 값이 대략 1,300 달러더군요. 물론 여러분은 티켓 값은 신경도 안 쓰겠죠. 근데 우리가 밥 먹듯이 타는 비행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어요.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을 파리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우리가 운행할 비행기에 쏟아부은 거예요. 오늘 비행에서 매 순간 누군가 간절히 원했을 그 꿈을 생각해봐요.”     


그 날 이후 나는 승객의 마음에 나의 에너지를 맞추려 노력했다. 비행을, 여행을 그리고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지기 않으려 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때 그 언저리선 언제나 지지직 알아들을 듯 말 듯 희미하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닿는다. 정확한 주파수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DJ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고 그날의 선곡이 들린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행복해진다. 세상 만물엔 저마다의 에너지가 있다. 공간에도 에너지가 흐른다. 내가 그곳에 당도한 순간 내 안의 에너지가 공간의 에너지와 만나 울리기 시작한다.   

  

나그네는 단순히 분위기에 취한 게 아니다. 공간의 주파수를 발견해 떨림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언제나 여행 잡지에서 본 사진 한 장에 반해 여행을 결심한다. 사진 너머로 미세하게 전해지는 오묘한 진동이 나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저곳에 있고 싶다’

그리고 그 공간의 주파수를 찾아 나그네가 되어 다닌다. 서로 다른 에너지가 만나 동일한 합을 이뤘을 때 찾아오는 희열과 감동을 느끼기 위해. 그 공간에 울리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위해.     


여행의 떨림을 글에 담아 그대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사진을 통해 진동을 느꼈듯이 글을 통해 주파수 언저리에라도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물론 비교조차 되지 않을 테지만 나의 에너지를 실어 찰나의 떨림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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