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첫 차는 한산했다. 그날 첫 번째로 철로를 타고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는 기분은 짜릿했다. 출근과 등교로 마음 급한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없어 충분한 개인 공간이 확보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단차가 낮은 계단엔 새벽에 떨어진 낙엽이 아직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은 내 생에 가장 규칙적이고 생산적인 해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허기지면 책을 들고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당시 실내악에 빠져 학업이나 취업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클래식 이론이나 실내악 명반을 찾아 들으며 공부했고 깊이 빠진 나머지 수업도 출석만 하고 도서관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일부러 맨 뒷자리에 앉아 출석 체크하고 화장실 가는 척 스리슬쩍 빠져나왔는데 교수님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국제학 개론이었는데 C를 받았다. 내가 낸 비싼 등록금의 절반 이상은 도서관 전기세로 나갔을 게 분명하다.
며칠 전 책장 정리를 하다가 당시 쓰던 노트를 발견했다. 소리 내어 읽기 부끄러운 감상평과 얕은 지식으로 늘어놓은 평론에 손발이 사라졌다. 컴퓨터보다 손글씨를 선호했던지라 모든 걸 노트에 기록했는데 한 자 한 자 눌러쓴 글씨를 보자 새삼스럽게 그때가 떠올랐다. 유독 시간이 빨리 가던 그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철저하게 계획된 하루를 보냈다. 분 단위로 통제된 삶을 즐기며 살았다. 내 몸, 생각, 계획 심지어 배고픔까지 통제하면서.
감각을 뚫는다
며칠 전 퇴근길 하늘. 누군가 태풍이 올 징조라고 했다.
고유수용성 감각기라는 게 있다. 고유감각은 근육이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감각정보다. 쉽게 말해 내 몸이(신체각 부분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원래 인간이 지니고 태어난 디폴트 값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이다. 당연한 걸 왜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설명하나 싶지만 고유수용성 감각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 과연 이 고유감각이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처음 아쉬탕가 요가 수련을 시작하며 목표는 하나, 건강한 몸이었다. 몸에 쌓인 독소가 빠져나가고 누가 봐도 건강한 몸으로 거듭나길 바랬다. 하지만 요가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했다. 수련을 하다 보면 종종 바보가 된 기분이 드는데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등 뒤에서 양 손을 맞잡아하는데 팔이 등 어디쯤에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발가락 뿌리 부분을 밀어 보지만 엉뚱한 부분이 움직인다. 애꿎은 종아리만 저리다. 내 몸에 붙어 나의 명령을 받지만 내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고유수용성 감각이라는 거창한 명칭이 붙을만하다.
"굳이 통제할 필요가 있니? 너무 피곤하잖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자유의지가 있다고 마음대로 움직이면 망가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콜릿만 먹을 것이며 넷플릭스를 완주하겠다며 밤을 지새울 게 분명하다. 금주는커녕 우울하다고 맥주를 마시고 기쁘다고 소주를 마실 텐데 말이 좋아 자유의지지 그냥 망나니 같은 삶이다. 리바이어던 몸에 수많은 인민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내 안에도 수백 개의 내가 있어 적절한 법과 규칙으로 통제해야 한다. 요가 수련에는 많은 규칙이 따른다. 술이나 담배도 안되고 수련 전날 과식을 해서도 안되고 드라마 정주행 한다고 밤을 새도 안된다. 안 되는 것들 투성이지만 요가라는 규칙을 따르다 보면 점차 파악할 수 있다. 요가 수련은 잃어버린 나의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창피하지만 나를 제대로 통제해 본 적이 없었다. 못했다. 자기 관리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그게 다 척이다. 척.
언제나 선악과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만다. 어떤 맛일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다. 한때 유행하던 덴마크 다이어트를 엉터리로 따라 했는데 모두가 잠든 사이 이불속을 기어 나와 어두운 베란다에서 초코 와플을 몰래 먹곤 했다. 참아야 했는데 도저히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시작한 것도 나고 다짐한 것도 나였는데 왜 숨어서 그렇게 눈치를 봤는지.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아는 오빠는 내 주변 지인 중 연봉이 가장 높다. 코까지 내려온 다크서클도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짙어 보인다. 아침 7시까지 회사에 도착 해 저녁 9시 넘어서도 일하다가 꼬박꼬박 회식에 참여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대학원이나 갈까 스마트폰을 붙잡고 이것저것 검색하다 쓰러져 잠이 든다고 했다. 다음날 겨우 일어나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쓰러져 잠이 들고.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삶의 가치는 제각각이며 무게를 따질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삶이든 주체는 '나'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었다면 '아는 오빠'에게 요가를 권했을 것이다.
'요가하면서 고유감각 한번 찾아보자'
하긴 요즘 내 코가 석자라 뭐라 말할 입장이 못 된다. 그래도 벅찬 아침을 맞이하던 때를 회상하며 내 삶을 내가 통제하기 위해 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