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래 Aug 13. 2020

우리동네 떡볶이 맛집을 발견했다


어느 날 동생에게 물었다.

‘떡볶이 왜 좋아해?’

‘맛있으니까’

‘그러니까 왜 맛있냐고! 돈가스도 맛있고 떡볶이도 맛있잖아. 떡볶이는 일주일에 번도 먹는데 돈가스는 한 달에 한 번만 먹잖아’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한 그녀가 답했다.

‘일단, 떡볶이는 다 잘 어울려. 라면 사리도 넣고, 핫도그도 찍어먹고, 튀김도 빠뜨려 먹고. 근데 맛있어’

그렇네, 그냥 넣었다 하면 다 찰떡이네.


살면서 떡볶이 싫다는 사람 못 봤다.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그럼 떡볶이를 한번 묘사해 보자. 탱글탱글 길쭉한 떡이 새빨간 소스에 푹 담겨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게다가 소스는 달고, 맵고, 짭조름하고, 새콤하고 혼자 다 한다. 여기에 어묵이 더해져 바다의 향까지 난다. 어쩌다 떡 옆에 붙어 딸려온 파는 또 어떻고… 표현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떡볶이는 일단 디폴트 값이 완성형이다.



나 역시 떡볶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이어트 최대의 적이 떡볶이라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달에 한두 번 정도로 자제하고 있지만 억제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법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수족관이 있었다. 웃기지만 거긴 물고기보다 떡볶이가 유명했다. 하교 시간이면 모든 아이들이 달려 나가 수족관 앞에 길게 줄을 섰고 나도 한 컵에 300원 하는 떡볶이를 매일 먹었다.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를 기다란 이쑤시개로 찍어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인심 좋던 주인아주머니는 돈이 없는 아이들에겐 150원어치도 팔았다.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떡볶이 맛으로 기억된다. 어떤 유명한 집에 가서 먹은 떡볶이도 수족관 떡볶이를 이기진 못한다.


내가 다니던 대학 매점에서도 떡볶이를 팔았다. 점심시간 주인공은 학식보다 주변 식당보다 매점 떡볶이였다. 인기가 많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전이면 다 팔릴 정도였다. (여대생들은 아침부터 떡볶이를 먹는다.) 입덧에 고생하는 졸업생이 잊지 못해 찾아 올 정도였다. 인스턴트와 레토로트 식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카타르로 떠났을 때 짐덩이의 약 3할은 떡볶이의 차지였다. 승무원이 되어서도 비행 준비를 할 때면 언제나 비행 전날 커다란 슈트케이스 안에 젓가락과 컵라면 그리고 떡볶이가 붙박이로 들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 후 자물쇠를 잠겄었다.


아름답지만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다 저녁 늦게 호텔로 들어와 컵라면과 떡볶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잠시 동안 기다리며 레토로트 식품을 발명한 이에게 감사를 전했다. 몇 천 km 떨어진 곳에서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니. 쫄깃한 떡을 오물거리며 그날 비행에서 만난 악몽을 떨쳐버리기도 했고 새로운 도시의 감동을 아로새기기도 했다. 무지개 빛 같은 소스 맛처럼 나의 온갖 감정을 담아 있는 힘껏 오물거렸다.


어느 날 토요일 오전, 요가원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데 길게 늘어선 줄을 발견했다. 우리 동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핫했던가. 그냥 아파트에 가게 몇 개 있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동네다.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이나 뭐 서울 어디 유명한 맛집이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냥 정말 동네 골목길이다. 약국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힐끔거리며 걸어가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10평이 채 안돼 보이는 떡볶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이해는 간다. 오죽하면 죽더라도 떡볶이가 먹고 싶었을까? 알고 보니 먼 곳에서도 부러 찾아온다는 유명 분식집이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걸려 이 구석에 위치한 한 평짜리 떡볶이집을 찾아와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다. 그 날은 요가 수련 중간중간 떡볶이가 생각났다. (수련은 망했다.)


무슨 맛일까? 줄 선거 보면 되게 자극적인 맛일 것 같은데.
좀 달콤하겠지?
아니다. 되게 매우려나?
안 되겠다. 끝나고 가봐야겠다.

방금 수련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 줄이 늘어서 있던 곳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매진을 기록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오기가 생겼다. 며칠이 지나고 평일 한가할 시간을 골라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나와 동생은 동시에 외쳤다.

‘이거, 수족관 떡볶이 맛이야!’

6년 내내 수족관 떡볶이를 먹고 성장한 나와 동생은 소문난 떡볶이 맛집을 찾아갈 때마다 수족관의 맛과 비교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사 먹은 게 이미 10년도 더  됐지만 그 맛은 우리 기억 속에 여전히 유효하다. 수족관 떡볶이와 굉장히 흡사한 그 떡볶이를 먹으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진한 그리움과 싸워야했다. 궁상맞게시리. 그러다 궁금해졌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떡볶이를 먹기 시작할까? 가슴에 노란 명찰 달고 교문을 드나들던 시절부터 시금까지 화날 때, 스트레스받을 때, 행복하고 벅찰 때. 아마 떡볶이엔 추억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맛있는 떡볶이 가게를 ‘학창 시절 학교 앞에서 먹던 그 맛’이라고 설명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


하늘길이 막혔다. 아니, 모든 길이 막히다 못해 넘쳐흐른다. 우울한데 떡볶이나 먹자. 이럴 때일수록 달달하고, 매콤하고, 짭조름한 떡볶이를 먹어줘야 해. 인생은 참 떡볶이스럽거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