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도서관에 앉아 무의미한 글자들을 끄적거린다. 그렇다. 여기도 도서관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생각보다 크고 쾌적하고 필요한 도서가 구비된 멀쩡한 도서관이 있다. 문득 의성에 내려오던 첫날이 떠오른다.
2021년 3월 15일 아침 8시, 서울역에서 출발한 새마을 호 기차 안에서 어울리지도 않게 감성적이 되어서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려 괜히 읽지도 않으면서 책만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이 시선이 계속해서 창밖으로 향했다.
‘아랫동네에는 벌써 목련이 피었네.'
집 앞에 목련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음지에 있는터라 가장 늦게 봄꽃이 올라와 다른 꽃이 다 지고 흰 봉오리가 맺힐 때쯤에서야 온전히 봄이 완성되었다고 느낀다. 아랫동네 목련을 보자 벌써 봄의 절정인 건가 어리둥절했다. 천천히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출발 전에 마신 라지 사이즈 커피가 신호를 보내왔다. 힘차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깜짝 놀래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제발 문을 잠가 주세요. 두 번 확인해 주세요. 괜히 민망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이어폰도 뺀 채로 글 작업에만 몰두했다.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참을 집중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느리게만 흘러갔다. 지금 심장 부근을 간질이는 이 감정은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나이 들면 방랑보다 정착을 선호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현실에서 안개 낀 미래와 희미해진 열정이 귀찮고 두려운 거다. 게다가 짐은 싸는 것보다 푸는 게 더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바리바리 잔뜩 싸 들고 스타벅스가 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역시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오늘 아침도 엘리베이터 없는 청량리역 계단을 20kg이 넘는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올라가야 했다. 우리나라에도 엘리베이터 없는 역이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기분 나쁜 심장박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약속 장소인 동대구역 밖으로 나섰다. 괜히 긴장되어 먼저 화장실에 들러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가 마음을 다잡고 역 밖으로 나섰다. 심지어 대구역과 동대구역을 헷갈려 새마을호가 대구역을 지나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차를 타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 어색한 공기를 밀어내고자 출신지부터 전공, 관심사를 끄집어냈지만 차 안은 김밥 속 단단한 단무지 씹는 소리로 가득했다. 물론 일주일도 안되어 야, 자, 너, 이 새끼, 저 새끼가 난무하는 관계가 되지만 아직까지 내외하는 사이였던지라 의성으로 향하는 40분 동안 편히 기대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와 대조되게 전국 인구 소멸 1위라는 의성군 안계면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의성 하늘은 흐렸다. 살짝 내려앉은 미세먼지가 서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면봉이 찌르고 지나간 코와 목이 더 따끔해지는 것 같았다. 보건소에 먼저 들러 남의 일일 줄 알았던 코로나 검사를 받고 드디어 안계면에 내려와 세 달간 지낼 새로운 보금자리에 20kg이 넘는 짐을 풀었다. 함께 지내게 될 룸메이트들과 다시 한번 신상을 캐묻고 잠자리 버릇을 공유하고 구역을 나눠 이부자리를 펴고 최대한 어색한 침묵을 채우려 바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이 날 자기소개에서 나는 '아침형 인간이며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 새벽 일찍 일어납니다'라고 공공연하게 선언해버린 터라 이후로 약 5주간 기를 쓰고 새벽 5시 30분에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안계ㅣ농로
다음날도 역시 흐렸다. 하늘은 흐리지만 농촌 로망은 실현해야 했다. 마당에 일렬로 늘어선 자전거 중 한대를 골라 전날 자동차를 타고 들어왔던 좁은 논두렁으로 끌고 나갔다. 의성군이 서울시보다 땅덩어리가 넓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방이 논이고 밭이고 과수원이다. 사방으로 연결된 몇 천 마지기 논이 하늘로 이어지는 곳이다. 흐린 덕분에 태양에 고통받지 않고 끝없는 논두렁을 따라 구름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듯 자전거로 내달렸다. 어느덧 도로가 멀어지고 저 멀리 은빛 트럭이 우주선처럼 지나쳐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고 잡초만 가득할 뿐 어떤 새싹도 올라오지 않아 자유로운 3월의 밭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서울에 살고 있는 걸까?’
학교 때문에, 스타벅스가 있어서, 원할 때 전시나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다 아니다. 단순히 부모님이 서울에 살기 때문에 거기 살고 있는 거였다. 내 선택이 아니었고 한 번도 왜인지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빌딩 숲, 스카이라인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내게 안계의 지평선은 거진 '샹그릴라'나 다름없었다.
최근에 어느 건축업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윗집도 그 위위 집도 나랑 똑같은 위치에 침대를 두고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어요.’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을 고민하고 탐구하고 갈망하고 때론 당당하게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으며 정작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게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삶의 터전, 내가 머무는 장소, 휴식의 공간이자 창작의 작업실이 될 수도 있는 곳, 1차원적인 문제를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자책으로 던진 ‘왜?’라는 질문에는 내 삶에 대한 고민이, 미래에 대한 계획이 들어 있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안온한 시골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잠들어 있었고 틈만 나면 실현 가능성을 재보곤 했다. 그래서 스타벅스도 없는 의성군 안계면에 내려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