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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ul 01. 2021

시골 플로깅

ㅡ 정의 내리는 일


플로깅이 무엇이냐, 한마디로 조깅하면서 눈에 띄는 쓰레기를 줍는 취미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쓰레기다. 조깅하는 김에 쓰레기를 줍는 행위가 아니라 쓰레기를 줍기 위해 쓰레기봉투, 집게 등을 구비하여 만발의 준비를 갖춘 후 달리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개념 취미생활이라 도심에서도 쓰레기봉투를 달랑거리며 밤거리를 달리는 무리를 쉽게 볼 수 있다. 핀란드에 있을 때 바이크 쇼츠에 니삭스를 갖춰 입고 귀에는 에어팟을 낀 채 신나게 쓰레기를 줍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석양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집게를 들고 달리는 남자의 모습은 단연 눈에 띄었다.

플로깅은 PLOKKA UP(pick up) - 아니나 다를까 스웨덴 어 -  JOGGING이 합쳐진 말이다. 사실상 운동의 범주에 들어가 ‘지구를 위해 달린다’는 모토를 달고 있다. 시골살이를 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플로깅을 꺼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플로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계ㅣ도로변 플로깅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겨우 1주 차다. 하루가 너무 쏜살같이 지나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정리하기도 전에 다음날이, 다다음날이 그리고 주말이 찾아와 버렸다.

'시골이라고 다 느리게 사는 건 아니구나.'


요즘은 매일 다른 주제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어제 텃밭을 가꿨다면 오늘은 농업 교육을 듣고 다음날엔 창업교육을 듣는 식이다. 오늘의 테마는 청소다. 매월 동네 주민들이 모여 마을 정화사업을 진행하는데 면사무소에 모여 조를 나눠 구역을 할당한 후 트럭 뒤에 올라타 플로깅 여정을 떠난다.

‘오늘 다 같이 마을 청소하는 날이라 저희도 가야 해요.’

우리는 3개 조로 나뉘어 찢어졌다. 트럭 뒤에 실려 아직 지형 파악도 못한, 아니 한 달이 지난다 해도 지리 바보인 나는 지형 파악은커녕 안계면이 동인지 서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어딘가로 실려갔다. 도로 한가운데 멈춘 트럭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뛰어내리고 장갑, 집게, 봉지를 지급받고 흩어졌다. 달리진 않지만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길가를 뒤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더 쑤시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까 두려워 조용히 넘어간 스폿도 있다. 다른 팀은 폐타이어와 냉장고에 정체 모를 동물의 뼈까지 발굴했다고 한다.


내 몸통만 한 기다란 집게를 들고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문득, 이게 바로 플로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첫 발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변기를 작품이라 ‘규정’한 사람에게 어떤 권한 혹은 권위가 있길래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더러운 변기를 ‘샘’이라 명명했으며 군중은 거기에 열광하는 걸까? 그럼 진짜 가치는 그 사물에 있는가 혹은 그 인간에게 있는가? 며칠 전 본 어떤 게시물에서 현대미술계의 테러리스트 뱅크시에 관한 글을 읽었다. 기본 억 단위를 호가하는 뱅크시의 작품을 작가도 출처도 숨긴 채 길거리 좌판대에서 60달러(한화 약 7만 원)에 판매했다고 한다. 다음 날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에 본인이 작품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상품은 순식간에 억으로 치솟았다. 가치가 정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플로깅이라 정해진 행위만이 플로깅은 아니다. 누군가 알아보고 가치를 더하면 플로깅이 되는 것, 쓰레기를 줍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촌이라고 정해 놓고 개인적인 기준보다 덜 발달되고 낙후된 지역에 내려와 사는 것이 진짜 귀촌인 걸까. 그렇다면 기대하던 시골살이는 지금부터 일까? 원체 청개구리 같은 나는 규정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가치를 알아보고 규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40분 정도 집게질을 하니 손가락 마디에 쥐가 날 것 같구나. 차라리 손으로 줍고 싶었으나 함께 간 어른들이 나중에 허리 아프니 반드시 집게를 쓰라고 말렸다. 쓰레기 봉지를 하나 가득 채워갈 무렵 우리는 다시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배달되었다. 동네 카센터에 내려 시원한 물과 사과즙을 얻어 마셨다. 길가던 낯선 이가 좋은 일을 한다고 물도 주고 달달한 음료도 주는 일이 실제로도 있구나. 동화책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일이 여긴선 일상이다.


우린 달리지 않았지만 집어 들었다. 스웨덴에서 달리면서 줍는걸 플로깅이라고 규정했다면 안계에서는 트럭을 타고 달리다가 내려 천천히 걸으며 줍는걸 플로깅이라고 정해버리면 그만이다. (아니면 WALK를 붙여 플로커도 괜찮겠다) 내가 ‘지금부터 시골살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정의를 내리는 시기는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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