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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Mar 05. 2024

자마미에서 만난 산타 2

해피투게더


산타는 동네 맛집이다. 작은 섬이라 외식할 곳이 마땅치 않을뿐더러 몇 있는 식당도 해 질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게 없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시끄러운 술집이나 카페를 찾아보기도 어려운 섬마을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나 혼자 여행할 땐 저녁을 굶어도 부모님을 배곯게 할 순 없다는 일념으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발견해 낸 식당으로 저녁에만 영업을 한다. 첫날 섬에 도착해서 내내 물놀이를 하고 코미네 여관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샤워한 후 여름휴가를 즐기는 사람답게 가볍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산책에 나섰다. 우리나라와 닮은 듯 다른 길을 거닐며 이국적인 섬이 풍기는 분위기에 흠뻑 취해 우리 가족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부러 골목길을 찾아 걸었다. 딱히 산타를 향해 찾아 나선 건 아니었지만, 어느덧 산타 앞에 당도했다.


"여기 맞지?"

울창한 나무와 이국적인 커다란 이파리가 인상 깊은 식물 사이에 자리 잡은 식당은 막 지은 것처럼 보여도 일정한 크기와 모양의 판자가 은근한 조화를 이루는 멋스러운 곳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창문으로 노오란 전구 불빛이 새어 나왔고 그 위에 일본 전설 속 요괴 가면이 걸려 있었다. 주술사의 작업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산타는 첫눈에 우리를 사로잡았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우리 단골이 되겠어.'


"현지인 맛집으로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식당 안엔 직원들이 남은 재료 손질을 서두르고 있었다.

어쩌면 매일 올지도 모르니 입구, 중앙, 구석을 면밀히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고 '이렇게 빨리 오시다니!'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의 종업원이 한자로 가득 찬 메뉴를 가져왔다.

"살펴보고 천천히 골라주세요."



한껏 느긋해진 태도로 식당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아직 해가 완전히 꼬리를 감추기 전이라 희뿌연 밖과 달리 모든 빛을 완벽하게 차단한 목조 건물 내에서 행복이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알코올이 들어가기도 전인데 엉덩이가 붕 떠오르는 기분을 맛봤다. 이 이국적인 식당을 잠시나마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떤 메뉴라도 좋으니 어서 메뉴를 골라 테이블 가득 늘어놓고 왕처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돼지인 건 확실한데..."


읽을 순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연속.

"나 돼지고기랑 생선회만 구분할 수 있어."
"그건 엄마 아빠도 할 수 있어."
"그냥 시키자. 내일 와서 다른 거 먹지 뭐."


어림짐작 눈치로 주문한 메뉴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이거 곱창이었네." (호르몬야끼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건 회가 아니라 수박 아니야? 깔깔" (숙성회라 일본은 회가 붉다.)



낯선 여행지에서 추구하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은 상상 이상으로 달콤하다. 마치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난 원래 이렇게 행복하고 유쾌한 사람이야.'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메뉴명, 처음 보는 식재료까지 내 안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했고 호르몬야끼동을 한입 먹자 폭발해 버렸다. 삐 ------


첫날 우리 가족은 산타의 음식이 진정 맛있었던 것인지 단순히 분위기와 맥주에 취해 그렇게 느꼈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저녁도 어김없이 산타로 향했다. 늦게까지 수영을 하느라 30분 늦게 도착했더니 주말 저녁엔 블로그 글이 예고했던 대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다행히 전날 우리가 앉았던 자리가 남아있었다. 럭키. 전날 먹었던 메뉴 정말 맛있었던 2개,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음식을 메뉴판 순서대로 주문했다.

'오후에 수영하며 바다 거북이를 봤기 때문에 분명 음식 운이 좋을 거야.'



왜 산타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 선물을 가져올 푸근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설렘이 떠올랐다. 일 년 내내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산타는 반드시 선물을 잔뜩 이고 찾아온다. 이번엔 온 가족이 조금 이른 선물을 받았다. 산타가 선물한 자마미 섬의 공기엔 행복의 스파이스가 섞여있던 모양이다. 쏟아질 같은 밤하늘 별들에 감동하고, 잔잔한 파도 소리에 힐링하고,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불편하게 뺨을 간질여도 까르르 웃음이 나왔다. 행복에 취한 가족 여행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여행이란 뭘까, 나는 왜 여행할까 늘 고민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깊이가 남다르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자식의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년 여행을 단행했을 부모의 마음을 이젠 거꾸로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보고,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내가 하는 좋은 것을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여행지에서 더 관대하고 너그럽고 행복한 나는 여행의 끝무렵 다음 여행을 꿈꾼다.



잔뜩 취한 우리는 밤이 깊도록 섬을 돌아다녔다.



덧붙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여행하고 싶은 도시를 다이어리에 적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내 자신만만 답을 내렸다.

'내 짝이라면 여행을 싫어하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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