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에세이만 써재끼는 니가 무슨 작가냐’ 하는 뼈아픈 의견도 많지만 '작가'라는 '지위'를 집필 장르, 문예지 등단, 책 출간, 전문 기고 등으로 자격 여부를 나눈다 할지라도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면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장비를 갖추고있어야 한다.
나만의 글쓰기 도구는 커피다. 심각한 커피 홀릭으로 아침에 일어나 맛있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시리얼이라도 한 숟가락 말아먹는 사람이 나다. 정량의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고 물을 끓이고 천천히 핸드드립을 내리는 신성한 의식을 거쳐 ‘글쓰기’라는 문에 도달한다. 물론 처음부터 내게 잘 맞는 글쓰기 장비를 갖추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규칙적으로 쓰지 않으면 그나마 간당간당한 글감과 겨우 연마한 쓰는 법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고 매일 아침 7시에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쳐 놓고 빈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잠은 물러가고 글이 찾아오기를 청했다. 안타깝게도 글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멍청히 앉아 있다가 의미 없는 낙서로 종이만 낭비하고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인 것 같아.'
명상, 요가 스트레칭, 아침 산책, 요리 등등 다양한 활동으로 순간 집중력 상승을 꾀해보았지만 글쓰기 위한 준비 동작으로 무겁다 못해 활동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버려 도저히 글 쓸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저녁 창작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지 고민을 거듭하다 마지막으로 진득하니 앉아 집중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책상 앞에 앉은 아침, 전날 동네 단골 카페에서 사 온 원두향이 미풍을 따라 코끝에 닿았다. 홀린 듯이 커피를 내렸고 펜이 술술 움직이는 마법을 경험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커피를 마시자 펜이 저절로 움직였다.
괴테는 이 새까만 음료를 악마의 유혹이라 표현했다는데 평소 텅 비어 있는 마음에서 악마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서야 떠오를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카페인은 선악의 경계에 있는 청소년기 악마쯤 되는 것 같다.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는 하루에 진하고 독하기로 유명한 터키식 커피를 50잔 이상 마셔대며 10시간 넘게 집필 강행군을 이어가고 볼테르 또한 초콜릿을 넣은 커피 30잔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커피와 글쓰기의 연관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진 셈이다. 대문호가 인정한 글쓰기 도구라니!
(발자크는 카페인 과다섭취로 50세 나이로 사망, 볼테르 역시 의사에게 경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과유불급이다. 조심하자!)
아침 7시, 서향에 가까운 내 방 책상에 앉아 베란다 창문을 열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뾰족한 이웃집 지붕과 새하얀 구름을 보며 의식에 따라 경건한 마음으로 내린 뜨거운 커피를 홀짝 - 식도를 통해 내려보내고 나서야 펜을 든다. 향기로운 액체가 위장에 뚝 떨어지면 찌르르한 느낌이 온몸에 전달되며 신기하게도 쓰고 싶은 말이 입가에 맴돈다.
아이디어의 원천이나 다름없는 원두 단지는어떤 순간에도 채워놔야 하는 주요 곳간이 되었다. 인구수 2,00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는 편의점도 차 타고 옆 마을로 넘어가야 있는 상황이라 카페는 꿈도 못 꾼다. 내 글쓰기 장비를 지킬 유일한 방도는 시내에 나가 일주일 혹은 이주일치 원두를 미리 구비해 놓고 아침마다 내려마시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