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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Aug 24. 2024

글쓰기는 요가와 같아

내 작은 카펫


몇 해 전부터 강사로서 요가 수업을 나가고 있다. 처음엔 변변치 않은 프리랜서 생활에 보탤 겸 애써 딴 지도자 자격증을 활용할 겸 면사무소에서 온 제안을 수락했을 뿐이었는데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정기적으로 요가 수업을 맡은 지 어느덧 3년째가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름 제자라고 따라주는 분들이 생기면서 책임감으로 개인 수련과 공부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여기 00면인데요. 요가 수업 해주실 수 있어요?”

수업을 맡아줄 수 있는지, 그리고 차를 타고 면소재지까지 와줄 수 있는지가 주요 관건으로 개강일과 종강일, 수강대상 및 인원, 수업 장소는 미정이다. 수강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모든 사항이 정해진 상태로 강사를 섭외하는 도시와 다르게 여기선 일단 ‘요가 수업 할 수 있어요’로 시작해서 ‘그럼 개강일 즈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로 끝나는데 아직 도시 마인드가 강했던 나는 불안한 나머지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차라리 폐강이 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수업 환경이나 시간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상 수강 연령대가 60대였으니 처음엔 뭘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심지어 담당자는 2시간 수업을 원했다.

"요가 2시간 하면 어르신들 쓰러질 수도 있어요."
"아 그래요? 체조랑은 다른가...? 통기타나 이런 건 중간에 쉬는 시간 있고 해서요."

(시간은 잘 절충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 장소에 도착한 첫날, 계약서에 사인하고 담당자가 이끄는 대로 면사무소 2층으로 올라가면서 이상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면사무소 2층에선 보통 주민자치위원회가 소집되거나 이런저런 회의가 진행되는데 어떻게 수업을 하지?'

이제는 익숙하다. 평소 면장이나 위원장이 올라 연설을 하는 낮은 단상 위로 올라가 요가 매트를 피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으면 수강생들이 우르르 (몇몇 분들은 트럭을 타고 다 같이 오기도 한다) 등장하고 시멘트 바닥에 요가 매트, 돗자리, 등산 매트 등 누울 자리를 알아서 깐다. 알로요가도 룰루레몬도 없지만 모두 요기니다.

     

대학시절 과외 알바조차 해본 적 없는 내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계획은 꿈에도 없었는데 수강생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처음엔 민망했지만 지금은 내 힘이 닿는 한 최대한 열심히, 언젠가 머리서기도 가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있다. 처음엔 무릎 피는 동작조차 어려워하던 분이 20회 수업을 꼬박 채우고 다음 동작까지 예상하고 척척 따라오는 모습에 흐뭇하면서 또다른 티칭의 방편을 알게 된 나도 한 단계 성장한다. 우리는 한 평이 채 안되는 한정적인 영역에서 모든 동작을 할 수 있는 요가만의 매력을 함께 알아간다.


글쓰기는 요가와 닮았다. 잘 되지 않던 동작도 꾸준한 수련을 통해 완성해 나간다는 기분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몸을 관찰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듯이 성실성과 간절함으로 임하다 보면 매일 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퇴보는 없다고 보장할 수 있다. 처음엔 문장 한 줄 쓰는 일도 어렵다가 꾸준히 쓰면 단락 하나, 둘 그리고 글 한 편이 완성된다. 매일 쓰는 습관을 길러 단순히 맞춤표를 찍는 하루에 의의를 두다가 조금 마음에 드는 글, 꽤 마음에 드는 글, 꽤 괜찮은 글로 눈에 띄게 실력이 향상한다. 더군다나 필요한 장비가 많은 것도 아니다. 노트북과 충전기, 연필과 노트, 스마트폰 혹은 기록할 수 있는 무언가만 있다면 필수 조건이 충족되니 얼마나 알뜰살뜰한 작업인가! 권태로운 시기가 찾아와도 어렵지 않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매일 앉아 글을 쓰는 공간을 벗어나 카페나 공원, 어디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글쓰기 마실을 나선다. 낯선 바깥 세상에서 타인의 글을 읽으며 나의 쓰기 습관과 부족한 문장을 돌아보며 한 단계 성장을 꾀한다.


처음 머리서기를 배우던 날, 벽에 기대지 않고 선생님의 도움도 없이 홀로 머리서기에 성공했었다.

‘성공했다!’

마음이 들뜬 순간 우당탕탕 넘어졌다. 어찌어찌 요행으로 섰던 것일 수도 있고 준비되었지만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 종종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다. 준비된 몸과 마음을 빌어 간절히 바란다면 성공하겠지만 때론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따라 실패하기도 하는 요가 동작처럼 글도 가변성을 띤다. 꾸준히 쓰던 일기도 턱 - 막히는 밤이 생기기도 하고 상금 주는 대회에 나간 것도 아니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마음이 조급해져 결국 한 줄도 못 쓰고 시간이 흐른다.


때론 뒤로 구르고 어쩔 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낑낑대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장소에서 스스로 정한 시련(요가 혹은 글)을 감내하고 이겨낼 때면 하늘이 정해놓은 길을 극복하고 운명을 쟁취한 주인공이 된 기분에 젖어 때때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더라도 꿋꿋하게 나아간다.


작은 카펫이 깔린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글을 쓸 때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된다. 자유로운 새가 되어 하늘을 날다가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듬직한 나무가 되었다가 세찬 파도가 되어 몰아치기도 한다. 완전히 나로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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