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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ul 19. 2019

- 못다한 이야기



베니스에서 도하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모든 서비스를 끝낸 후 점검 차 기내를 돌고 있는데 한 승객이 열렬한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뉴질랜드로 3살 그리고 6살인 손녀와 손자를 만나러 간다는 할머니 손님이었다. 


Wait! Something that you have to see
잠깐만 네가 꼭 봐야 하는 것이 있어


그녀는 창문 밖을 가리켰다. 보름달이 사라졌다. 월식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런 건 꼭 봐야 해. 





손자, 손녀를 위해 기내식으로 나온 초콜릿과 각종 스낵 그리고 어린이 손님에게만 주는 장난감까지 따로 부탁하여 챙기던 그녀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어 남은 초콜릿도 싹 모아 몰래 전해줬는데 지나갈 때마다 나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월식. 굳이 나를 불러 월식이라고 알려준 감사한 친절.


승객들이 앉아있는 캐빈에선 볼 수가 없어 그녀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후 서둘러 뒤쪽으로 가서 비상구에 붙어 있는 작은 창문으로 개기월식을 지켜봤다. 이렇게나 가까이서 월식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비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 사건들 그리고 자연현상과 맞닥뜨리는데 그중에서도 제일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현상들이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도하 공항에 도착하자 달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고 차오르던 달이 숙소에 도착할 무렵 온전한 보름달로 돌아와 있었다. 베니스에서 본 바로 그 보름달이었다. 

'맞아, 나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베니스에 있었지'


여전히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내가 어제 어느 도시에 있었는지 깜빡깜빡하겠지만 앞으로 보름달이 뜰 때마다 베니스에서의 하루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뉴질랜드까지 15시간은 더 날아가야 할 텐데... 그 손님이 잘 도착하여 손자, 손녀를 만났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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