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결이 같다는 것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아름다운 광경과 조우한다던지 혹은 생각 없이 한입 베어 문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던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지만 결국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는 선물과 같은 순간들이 있다.
부다페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야경 때문이었다. 뭐 볼 게 있나 싶기도 했고 야경 명소로 유명한 국회의사당 빼고는 별 볼일 없는 동유럽의 소도시라고 혼자 치부해버렸다. 애초에 기대가 없었던지라 사소한 것들 – 예를 들면, 카드나 유로가 통하지 않는다던가, 유로는 지폐만 받고 잔돈은 헝가리 동전으로만 거슬러 준다던가 – 에 짜증이 났다. ‘그래, 어차피 야경 보러 온 건데 신경 끄고 저녁에 산책이나 나가자’
근데 사람 마음이란 게 갈대와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변한다. 숙소로 향하는 길, 거리 가득한 활기가 나를 부추겼다. ‘정말 방에만 있으려고? 이 날씨에?’ 마냥 복잡하기만 하고 정신없던 프라하와는 또 다른 분위기에 이 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언제 또 온다고 밤에만 나가. 아래 보니까 완전 맛집 천지던데… 나가자!’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유독 레스토랑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고기를 주 메뉴로 판매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육즙 가득한 고기 패티로 유명한 수제버거집과 뜨거운 돌솥에 스테이크를 올려 나오는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까지… 부다페스트의 주요 산업이 축산업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구글 평점에 유독 신뢰를 퍼붓는 요즘 가장 많은 의견과 높은 평점을 자랑하는 stone steakhouse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고기’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소, 돼지, 양, 닭, 거위 등 온갖 종류의 고기를 판매하는데 원하는 부위를 초벌구이만 한 후 뜨겁게 달 군 돌판에 얹어 나온다. 치익 –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와 하얀 연기가 테이블을 가득 메웠다. 부다페스트 지역맥주 –로 기분 좋게 잔을 부딪히며 늦은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꿀꺽 – 크게 들이켠 맥주잔의 빈 위쪽 공간에 엔젤링이 생겼고 내 마음도 함께 날아올랐다. 음식이 주는 힘이 참 대단하다. (알코올의 힘인가?) 느긋한 식사 자리는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다양한 각도의 안정감을 부여한다. 맛있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의 대화, 여행자로서 느끼는 저녁 무렵의 여유, 부른 배만큼 마음이 차오르는 시간이다.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선사한 Stone steakhouse에서 이슈트반 대성당까지는 해가 지면 더욱 붐비는 부다페스트의 먹자골목이다. 9시가 넘어서도 문 닫은 식당 하나 없이 왁자지껄하기만 하다. 아쉬운 마음에 시내 구경과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돌아본 후 돌아와 근처 수제버거집에서 아주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역시나, 구글 평점은 꽤 믿을만했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넓은 광장 혹은 쇼핑몰이나 다른 관광지로 둘러싸인 여타의 유럽 도시와는 다르다. 그곳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우뚝 서있다. 혼을 쏙 빼놓는 정신없는 광장이 아니라 유명 오페라 가수의 독무대를 보듯 느긋하게 노천카페에 앉아 광장 분위기와 성당 외관만을 주목할 수 있다. 낮은 건물과 작은 노천카페와 식당 등이 밀집해 있어 왠지 모를 안정감까지 느껴졌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만 받는다.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여지던 마음이 포린트만 받는다는 소리에 싹 사라졌다. ‘그래, 성당 많이 봤잖아. 시간도 없는데 빨리 강가로 나가자.’
서서히 주홍빛이 퍼지는 부타페스트의 하늘을 보면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부다 왕궁으로 향하는 세체니 다리 반대편으로 쭉 걷다 보면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가의 신발들’이 주인을 읽은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있는 게 보인다. 구두, 장화, 아이의 신발 등 주인을 잃은 60켤레의 신발 조형물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잔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장소로 2005년 조성되었다.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신발을 벗게 한 뒤 잔인하게 총살 후 다뉴브 강으로 밀어 넣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그 넓은 도나우강이 며칠 동안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상상하는 것조차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악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분노가 차올랐다. 사람들은 꽃다발을 놓고 잠시 묵념을 하기도 하고, 신발 안에 초를 피우기도 하면서 추모의 기도를 올렸다. 해질 무렵, 잔잔하게 흐르는 도나우강을 배경으로 어지럽게 놓여있는 강가의 신발들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무거운 책임감을 상기시켰다. 한국전쟁을 겪고 여전히 남과 북이 갈라진,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의 현실도 떠올랐다. 종종 여행 중 다른 나라에서 마주하는 아픈 역사들은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잊고 사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강가의 신발들에서 왔던 길을 돌아 부다 왕궁으로 가는 세체니 다리로 향했다. 375m에 달하는 이 다리는 다뉴브강의 동쪽과 서쪽을 이어주는데 이 다리를 건너야지 부다왕궁이 있는 캐슬힐로 올라갈 수 있다. 분단위로 변하는 부다페스트의 밤하늘과 하나 둘 조명이 켜지는 시내의 불빛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덧 캐슬힐로 향하는 모노레일(푸니쿨라) 앞에 도착해 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낭만적인 야경이 펼쳐지는 시간이면 세체니 다리는 물론 시내 곳곳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들로 가득하다. ‘나는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아.’ 애써 눈을 돌리며 모노레일로 돌진했다.
캐슬힐은 상당히 높아서 도보로 빙 돌아가면 꽤나 먼 거리지만 모노레일(푸니쿨라)을 타면 5분도 채 안돼 오를 수 있다. 오르막길이라 올라갈 땐 모노레일을 내려올 때는 천천히 걸어가는 걸 추천한다. 캐슬힐 중앙에 위치한 부다왕궁은 1265년 최초로 완공되었다. 과거 국왕이 살던 이곳은 현재 국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다왕궁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이 위치해 있는데 반나절은 투자해야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많은 걸 언제 다 둘러보나 고민을 하며 모노레일에서 내린 순간 어부의 요새고 뭐고 다 사라져 버렸다. 눈 앞에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펼쳐져 있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밤의 부다페스트. 특히 저 멀리 보이는 국회의사당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도시의 야경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좀 더 정면에서 가까이 볼 순 없을까?
캐슬힐에서는 한쪽 면만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남들 다 가는 어부의 요새와는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니 곳곳에 배치된 근위병들도 부다왕궁과 옛 유적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어느덧 내리막길까지 다다랐고 그만 멈추고 캐슬힐에서 보이는 풍경에 만족할까 싶던 순간 저 아래쪽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언뜻 보였다. 정면으로 보이는 부다페스트 야경의 상징, 국회의사당이었다. 붉은빛이 도는 노란 조명 하나만 켜졌을 뿐인데 다뉴브 강 건너편의 국회의사당은 낮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설사 오늘 하루 온종일 방에만 처박혀 있다가 국회의사당만 보러 나왔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을 장관이었다. 정말이지 왕의 머리 위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왕관과도 같았다. 넋을 놓고 바라본 야경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다시 언덕길을 올랐다. 그냥 지나쳤던 부다왕궁과 옛 요새의 유적을 찬찬히 둘러보고 밤의 정원을 산책하듯 어부의 요새까지 나아갔다. 마차시 성당 앞 헝가리 최초의 국왕 성 이슈트반의 청동 기마상과 겔레트르 언덕 위 월계수를 든 자유의 여인상이 저 멀리 보였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지나친 아름다움을 보고 눈이 멀어버린 순진한 이처럼 부다페스트의 야경에 얼어붙기라도 한 건지 내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고 더 이상 나아가는 건 무리였다.
마차시 성당도 주변의 작은 마을도 못 봤지만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던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후회할 자리 따위는 내어주지 않았다. 다시 한번 밤하늘을 눈에 담고자 캐슬힐로 돌아오니 부다페스트 밤하늘에 붉은 달이 떠있었다.
캐슬힐에 올라 보는 붉은 달은 유난히 크고 선명해 보였다. 누군가 가까이 끌어다 놓은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마음을 담은 듯한 붉은 달이 이미 까맣게 변해버린 밤하늘까지 붉게 물들였다. 야경이 유명한 부다페스트에는 유독 웨딩 사진을 촬영하는 커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부럽게시리. 문득 나의 사람은 어디 있을까, 아니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 말이다. 외모가 수려하다거나, 취미나 좋아하는 게 같다던가, 버릇이 어떻게 된다거나. 인종, 국적, 배경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다 부질없다는 걸.
나는 생각의 결이 같은 사람이 좋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외모를 갖고 있던, 배경이 어떻게 되던 나와 같은 결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잘 흘러가더라. 직업상의 이유로 만나는 사람과 오랜 시간 깊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신기하게도 함께 비행하는 크루나 승객 혹은 다른 도시에서 만난 낯선 이와 단 몇 분의 대화로 서로를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와, 나랑 통한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생각의 결이 같은 인연을 만나는 것 만큼 감사한 순간이 없다.
개기월식 중 빛의 산란으로 나타난다는 붉은 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곤 한다. 아무렴 어때. 아름답기만 한걸. 과학적인 현상일 뿐 흔하지 않은 기회다. 부다페스트의 붉은 달을 보는 순간 나와 같은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이와 다시 한번 이 곳에 오겠다고 다짐했다.
다뉴브강(도나우강) 서쪽의 구릉지인 부다(buda)와 평야지대인 동쪽의 페스트(pest)가 합쳐서 부다페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마차시 성당 옆에 위치해 있는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새다. 고깔모양의 지붕이 참으로 인상적인데 19세기 헝가리 전쟁 당시 어부 조합이 요새를 방어해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마차시 성당(Matthias Church)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마차시 1세의 머리카락과 가문의 문장이 보관되어 있어 마차시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영개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 장소로 이용된 역사 깊은 곳으로 후기 고딕 양식의 화려함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