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내가 해외를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검색이었다. 틈 날 때마다 00 학생 컨퍼런스, XX국제회의, **봉사 등 비행기 값은 물론 숙소까지 지원해주는 해외 대외활동을 검색했고 강의와 강의 사이에 지원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내는 게 하루 일과였다. 다른 학교 게시판까지 뒤져가며 신청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활동에 지원을 했고 덕분에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활동이나 이제 막 생긴 1회 차 행사들의 경우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경우도 있어 ‘한국 대표’라는 걸맞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참여한 적도 두어 번 있었다. 대부분의 활동들은 수도나 유명한 지역이 아닌 이름조차 낯선 곳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혼자선 가기 힘든 곳을 여행하는 행운도 누렸다. 그래서 필리핀도 인도네시아도 수도가 아닌 저 먼 지방을 먼저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보다 덜 어설픈 지금도 못 누릴 참으로 감사한 기회였다.
그때 처음으로 밤 비행기를 타 봤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가는 가루다항공의 늦은 밤 비행기였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였는데 감기였는지 떠나기 이틀 전부터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정말로 갑자기. 온몸이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냥 포기하고 쉬어라’ 말리는 엄마, 아빠의 말씀을 뒤로하고 되는대로 수트케이스에 옷을, 필요한 것들을 집어던지듯 짐을 싸고 기어코 인천공항 출국장엘 들어섰다. 종합 감기약, 지사제, 두통약 등 온갖 종류의 약을 챙겨 탑승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첫 FSC(Full Service Carrier)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넓고 포근한 좌석에 눕듯이 앉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승무원이 깨워 일어나 보니 기내식이 제공되고 있었다. 땀을 너무 흘려 허기졌는지 전부 먹어 치우고 감기약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담요를 턱끝까지 끌어올린 채 한참을 자다 일어나 비척비척 화장실을 갔다 오는데 누군가 슬며시 내 팔을 잡았다. 가루다 항공의 승무원이었다. 뒤쪽에 간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심심하거나 배고프면 먹으라며. 얼굴이 엄청 안돼 보이긴 했나 보다. 어쨌든 친절한 승무원이 건넨 칙촉은 꿀맛이었다. 유명 제과점에서 파는 개당 5000원짜리 고급 쿠키보다 맛났다. 그리곤 또 잤다. 깨우니 일어나 굿나잇 스낵을 받아먹고 다시 잤고 슬며시 눈을 뜨니 닫힌 창문 틈에서 슬며시 오렌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후들후들 떨며 탔던 나는 개운한 몸이 되어 마치 열을 앓다 싹 나은 아이처럼 씩씩하게 입국장을 걸어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일행을 만나 유심칩도 사고 또다시 5시간 벤을 타고 반둥(Bandung)이란 지역에 도착했다. 감기를 앓고 난 후 개운해진 몸으로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순간의 기분은 마치 무더운 여름 탱크보이를 한입 쭉 - 빨아들였을 때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과 같았다. 이후 반둥과 족자카르타 (Yogyakarta)에서의 하루하루는 즐거운 모험의 연속이었고 이 모든 게 고통을 무릅쓰고 밤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건강의 위협은 없었다. 단지 감기였을 뿐이다.)
2014년 1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첫 밤 비행기의 맛을 보자 이것이 과연 우연이었나, 나는 밤 비행기 형 사람인가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로 2월 대만으로 향하는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밤 비행기였다. 이번엔 어쩌다가 아니라 일부러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끊었다. 가장 싸기도 했고 ‘밤 비행기’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또다시 나를 행운으로 이끌어 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를 만나기 위해 타이베이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긴 줄 속에서 오금이 저릴 정도로 바짝 긴장한 나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인지 두려움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고 심지어 평생 이 줄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랐다. 떨리는 손으로 수트케이스를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자동문을 나서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 친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꽤 오래전 일인데 오른편에 서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복합적인 감정의 혼돈 속에 남은 건 행복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아, 밤 비행기와 나는 찰떡궁합이구나'
지금은 피로에 찌들어 비행기만 탔다 하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지만 당시엔 아직 젊고 체력이 남아돌아 언제나 눈이 말똥말똥했다.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했다. 어쩐지 비행기만 타면 집중이 더 잘됐다. 남들은 자고 있을 시간에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을 때면 나에겐 하루가 48시간이 된 느낌이었다. ‘생산적인 것’에 목을 매던 시절이라 남들 잘 시간에 책 읽고, 공부하는 것만큼 나를 뿌듯하게 하는 행위는 없었다. 승무원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나의 여행은 언제나 밤 비행이었던 것이다.
비행이 일이 된 후로는 좀 다른 이유로 밤 비행이 좋았다. 밤 비행은 고요했다.(대부분 그랬다) 승객들은 잠이 들고, 기내도 하늘도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오로지 조종석과 갤리만이 빛났다. 아무도 콜벨을 누르지 않았고, 신경질 부리지도 않았고, 무리한 요구로 크루를 괴롭히지 않았다. 승무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최고의 손님은 탑승하자마자 잠이 들고 착륙 후 깨어나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고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밤 비행이 좋았던 건 아니다. 밤 비행에서의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밤을 넘어 새벽 비행을 하게 될 때면 해와 달을 동시에 보는 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쪽에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때 다른 한쪽에선 뿌연 달이 박힌 어둠이 존재하는 순간. 그럴때면 신비로운 힘이 나를 지배한 듯 착륙 후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보통의 삶에선 밤이되면 육체는 머물고 정신만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꿈꾸던 세계를 여행한다. 하지만 밤 비행기 안에선 나의 육체가 꿈꾸던 세계로 이동한다. 정신과 함께 말이다. 언제나 일탈을 꿈꾸던 그곳으로.
밤 비행기 안에서는 낮동안 현실세계에 있던, 아니 붙어 있어야만 했던 나의 몸과 마음이 - 일탈을 꿈꾸던 마음까지도 – 일체가 되어 함께 떠나는 게 가능해 진다. 그래서 밤 비행이 특별하다.
승무원이 되어 매일매일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며 항상 궁금했다. '과연 저들도 밤 비행을 좋아할까?' 혹시 그동안 밤 비행기를 피했다면 일부러라도 타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당신의 육체가 정신을 따라가는 진귀한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인도네시아행 밤 비행기에서 씻은 듯이 나았고, 대만행 밤 비행기에선 자고 나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수차례의 밤 비행에서 해와 달을 동시에 마주했고 밤의 신비로움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