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ventureun Aug 09. 2020

가스펠 프로젝트(10) - 자유의 복음을 선포하시다

(누가복음 4:14-22) 2020.08.09(일) 여호수아 이길탁 목사

예수님은 공생애 첫번 째 장소로 갈릴리를 선택하셨다.

갈릴리는 사역지로 두가지 장애가 있는 지역이었다.


1) 소외계층들이 모여사는 멸시의 장소

- 주목 받기 어려운 곳, 명분은 얻을 수 있으나 실리가 주어지지 않는 땅.

2) 예수님의 고향

-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어렵다.


가장 낙후되고 가난하여 주목 받지 못한 것, 고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선택하신 이유.

쉽게 할 수 없는 결단을 내린, 안정감을 내려놓고 어려운 땅으로 결단하는 것.

결단을 할 수 있는 용기


예수님께서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시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있고 싶은 곳이 아닌, 있어야 할 곳으로 나아가는 믿음.

소명이 주어졌을 때, 있어야 할 곳으로 나아가는 믿음이 필요하다.

소수의 제자들과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삶의 문제로 찌들어 있는 사람들 위주로 만나셨다.


예수님의 인생 가운데 정리하면,

거룩한 낭비의 삶이었다.


수가성 여인 한명 만나기 위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거절하는 땅, 사마리아로 들어가셨다.

효율을 중요한 근거라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한 낭비'의 표본을 보여주신다.

영혼을 위해 낭비할 줄 아는, 있어야 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세상이 변한다


열악 하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나아가자.


마태복음 4: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에 퍼진 것은,

예수님 께서 베푸신 기적에 기인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와 복음에 대해 전파하셨다.

그게 메인 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의 관심은 '기적'에만 있었다.

눈에 보이는 병 고침이 그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이었다.

병 고침은 기적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통로이며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기적이다.


기적을 쫓아 다니는 사람들은 기적이 끝나면 신앙이 끝난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다.

예수님 쫓아 다니는 신앙이 되자.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시리아와 유대 가운데 퍼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 소문을 경계하셨다.

소문나고 관심을 받는 것은 좋을 수 있지만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기적만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그냥 성령 충만함 속에 말씀을 전하셨을 때

그 말씀의 권세 앞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그 말씀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것.

설교자를 기억하는 예배가 아니라

그 말씀이 내 마음 가운데 깊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내 심령을 움직이게 하는 그 마음, 그말씀이

심령 가운데에 남아있기를.


누가복음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늘 하시던대로": 카타토 아우토

‘카타 토 아우토kata . to . auV to .’는 ‘평소와 같이’라는 의미


[성령 받은 자의 삶]


1) 기존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자

: 성령의 충만은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일상을 떠난 것은 문제를 일으킨다.

일상 속에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 공동체가 덕을 얻고 일상이 축복 받는 성령 받은 자들의 축복

2) 어렵고 힘든 곳이어도 피하지 않는다.

: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 하였으나, 이제 하나님이 추구하는 삶을 본다.

회당을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으셨다.

공동체가 주는 축복이 크지만, 그러나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 받는 상처와 실망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은 실망이 뿐이지

복음에 오류가 있거나 하나님이 잘못되서가 아니다.

상처 받을 때에도, 실망 했을 때에도 예배당과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


성령받은자가 겸손하지 못할 때, 공동체와 교회가 깨지는 것이다.

성령은, 기존 질서를 깨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존의 것에서 변화 되는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펼쳐서 한 말씀을 읽기 시작하셨다.

누가복음 4: 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

예수님께서 그 수많은 말씀 중에 이 말씀을 읽으신 이유,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다는 너무나도 가난했고, 눈먼자와 같았고, 포로된 자와 같았다.


절망에 때에 나오는 희망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

우리는 자유를 잃어 버린채 늘 바쁘고 분주하다.

형체 없는 조급함과 두려움 가운데에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돈과 권력에 성공에 눈멀어 있다.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무게 속에 억눌려 있다.


"기름 부은자" : 메시아 Messiah

성령의 능력이 부어지는 것으로 의미가 바뀐다.

하나님은 성령을 목적없이 소진하시지 않으신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 충만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성령을 낭비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누가복음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가, 소문의 장본인이 목수의 아들임을 알고

사람들이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 회당에 들어왔다.

온갖 기적을 일으킨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는 무슨 말씀을 전할까?

그런 기대 감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였을때 어떤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 61장 말씀을 대언하였다. 그냥 읽었다.


누가복음 4: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토록 기다려 왔던 그 구원의 시대가 시작된 것임을 선언하는 것.

메시아의 오심: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임재

온갖 걱정과 의심 가운데에 있는 우리 심령 가운데 움직일 것이다.


기록되어 있는 말씀 가운데 내가 도전 받고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편견' 예수님의 집안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메시아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독'이 되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그들처럼 가난했었다.

공생애 전 30년 동안 나사렛 땅에서 함께 살아왔던 그 경험이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나의 경험과 편견이 방해한다.

나 다해봤어, 나 다알아,, 이런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이런 편견 가운데에 자유해져야 한다.


편견: 익숙한 것에 사로 잡히는 것.

이 것을 경계 해야 한다.

익숙한 것 만큼 우리에게 독이 되는 것이 없다.


이 곳 가운데 극복 되고자 할 때

내 모든 삶에 고난가운데 은혜가 공급됨을 믿습니다.


편견/익숙함에서 일어나십시오.

익숙함과 싸움하십시오.


존재로서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광야 40년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을 이겨내라고 말씀하신다.

소문으로서의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그때마다 충족 시켜 주신다.

존재로서의 예수님은 당신이 원하는 곳에 부르십니다.

있어야 할 곳으로 계속 콜링해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때로는 불편하게 하신다.


포로자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눈먼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하시며,

억눌린 사람을 해방시키는 그 능력의 주님으로 다가옵니다.


존재로서의 예수님은 말씀으로 무장하여

주어진 삶을 살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있고 싶은 곳보다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늘 하던대로, 어려워도 힘들어도 그 곳을 변화 시켜라.


존재로서의 예수님을 따르자.....

하나님께서 그 말씀 앞에 우리를 초대 하십니다.

자꾸만,,,

내 삶에 중앙 무대에서 예수님을 밀어내고

내가 중앙 무대에 서고자 하는 그 삶의 오늘 가운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자리는 예수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삶의 중앙 무대는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스펠 프로젝트(9) 인생의 목마름에 허덕이는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