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
2025년 말 연말에 뮌헨에 잠시 다녀오게 되었다. 함부르크에서 맞는 생소했던 연말분위기가 익숙함이 되자, 감흥이 사라졌다. 독일에서는 해의 마지막날, 폭죽을 터뜨린다. 아이 어른 남녀노소 없이 원하는 만큼의 폭죽을 사서 터뜨리기 시작한다. 저녁 9시부터 시작해 밤새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처음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 밤새 터지는 크고 낯선 소리에 온 가족이 잠을 설쳤다.
다음 해가 되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경험으로 알게 되니, 아이들이 참여를 해보고 싶어 했다. 폭죽을 사서, 위험하지 않은 곳을 찾아 폭죽을 터뜨렸다. 그다음 해가 되자, 조금 더 과감하게 다양한 폭죽을 사는 여유도 부려본다. 동네사람들과 삼삼 오오 모여 함께 터뜨렸다.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감흥이 없어지고 있었다. 올해는 남편이 다른 곳에서 연말을 한번 보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간 곳이 뮌헨이었다.
6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뮌헨에 도착했다. 익숙해진 장거리 여행에 6시간 기차여행은 끄떡없는 아이들이다. 그래도 여독은 여독인지라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조금 쉬고 저녁을 먹으려고 생각했더니 이런, 다음날이 뉴이어 연휴라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오늘은 모든 상점이 일찍 닫는 날이었다. 다음날도 문 여는 상점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부랴부랴 마켓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으나 이미 문을 닫았다. 이곳저곳 검색 끝에 단 한 곳이 있었다. 그나마도 30분 안에 닫는단다. 숙소에서 마켓까지는 '이런' 걸어서 15분이 넘는다. 별수 없이 남편이 급하게 전동킥보드를 조달했다. "야! 타!" 옛날사람 흉내를 내며, 조심조심 전동킥보드를 타고 마켓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세일마켓이다. 물건의 품질이 아주 좋진 않지만, 가격이 저렴한 편이어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독일에서는 마켓종류에 따라 사람들의 차림새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마실물을 골랐다. 저녁 먹기 전 아이들에게 줄 간식으로 요거트 안에 과자를 넣어 먹는 한국의 비요뜨 같은 녀석들도 골랐다. 계산을 위해 줄을 섰다. 본능적으로 계산대에 있는 언니를 보며, 내가 소통하게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체크했다. 허름한 차림새, 아무렇게나 염색한 머리, 거친 치열,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눈썹이 보인다. 내 차례가 되어, 요거트를 위한 일회용 수저를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영어를 하실 수 없는 분이었지만, 내 말을 알아듣고 일회용 수저를 찾아주기 시작하셨다. 한참을 찾아도 일회용 수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분의 수고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괜찮다며 계산을 했다.
계산을 마치고 가려는데 그분이 나를 불러 세운다.
" Hunger?(배고파?)"
내가 유일하게 아는 몇 안 되는 독일말이다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조금은 난처해졌다. 배고프다고 하는 게 이 상황에서 맞는 건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뭐 난 외국사람이니까 편하게 대답하자 싶은 맘이 들어 내 딴엔 농담 섞어
" 훙거훙거 "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그분이
" Warte (기다려봐 )"라고 하며 어디론가 들어가신다.
나와 남편은 기다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때 그분이 수저를 들고 나오신다. 부엌에서 밥 먹을 때 쓰는 평범한 스테인리스 수저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쥐어주셨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고, 당황스러웠다. 독일에서 공짜란 없다.
난 그 자리에서 '요거트를 얼른 먹고 수저를 돌려주어야 하나?' 싶은 맘이 들었다.
요거트를 먹어야 하는 건 배고프다고 했던 내 말에 대한 책임이었고, 또한 공짜가 없는 독일에서 수저를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어버버 하고 있으니, 그분이 뭐라 뭐라 독일말로 하신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한마디 거드신다
" 노 프라블럼 유캔 테이크 ( 가져가 괜찮으니까 ) "
그제야 있던 텐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따스함이 채운다. 외국인인 나에게 그분이 호의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배고프다는 나에게 본인들이 쓰던 수저를 주신 것이다. 나는 수저를 꼭 쥐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마켓을 걸어 나왔다.
배고파본 사람만이 배고픔을 아는 법이다. 그분의 엉성한 염색머리가 그분의 고르지 못했던 치열이, 그리 따스해 보이지 않던, 옷차림새가 내내 머릿속에 맴돈다. 아이들에게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면서도 수저를 최대한 깨끗이 씻고 있는 내 맘이 너무 이중적인 듯하여 또 한 번 어쩔 줄 모르는 여행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