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조차 못해본 독일 미용실 그 처참한 실패기!

독일일상에세이

by 영어하는 소시지

미용실을 가야 했다.

독일에 3년째인데 한 번도 미용실을 가 본 적이 없다.

사느라 바빴고, 스타일 신경 쓰며 만날 관계도 없었다.

처음 1년은 나를 적응시키고 아이들을 적응시키느라 미용실의 ‘미‘도 관심이 없었다.

미용실의 첫 경험은 남편과 큰 아이가 간 동네 미용실이었다.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감동하여 선택한 미용실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잘라주셨는데, ,

결과는 처참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머리가 작고 얼굴이 길지 않은 독일 사람들에겐 어떤 머리를 해놔도 크게 다를 것 없겠지만,

한국사람들은 그들만의 얼굴형이 있지 않은가.

가뜩이나 긴 남편의 얼굴이 과하게 길어 보여, 당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종종 곧 뽑아 먹어도 되겠다며 당근을 쑤욱 뽑는 시늉을 하면

남편도 본인이 쑥 뽑히는 시늉을 내주며

우리는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했다.

머리는 자라지 않는가.


이제는 내 차례가 온 듯했다.

작년 한국에서 자르고 온 머리가 8개월 정도가 되니

중년에 너무 치렁치렁한 구신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 자르고 싶었다.

미용실에서 자르기로 결심을 하고,

동네 미용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미용실은 ‘UNIQUE’라고 마트를 오가며 보던, 나름 미용실같이 멋져 보이는 곳이었다.

마음을 먹은 터라 , 쿨하게 입장했다.

혹시 오늘 커팅 예약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미용실 디자이너분이 영어를 못하셔서, 머리를 자르던 ‘친절한 손님’의 도움도 받았다.

이름을 입력하고, 주소도 입력하고, 시간도 한 시간 뒤로 입력을 한 뒤,

그다음 가격칸이 나왔다.

“99유로 ”

내가 허락한 내 마음의 가격은 70유로였다.

가격을 보는 순간, 맘이 좀 처참해졌다.

“가격이 99유로인 거니?”

확인해야 했다.

“응, 디자이너가 자르는 거고 샴푸도 해주고 드라이도해줘 ”

참고로 남편과 아들은 머리도 감아주지 않았다.

난 너무 당황스러워 ‘친절한 그 손님’에게 물었다

“미용실가격 원래 비싼거니? 아니면 여기가 특별한 거니 ”

“미용실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진 않아”

생각해봐야 할 가격이었다

솔직해져야 할 때였다

“미안한데, 조금 생각을 해보고 와도 되겠니 ”

“슈어 카인 프호블림”

문제없다는 디자이너를 뒤로하고 나는 당당하지 않게 나왔다.

그러나 담담하게 보이려 애썼다.


다음 날 다른 미용실에 갔다.

놀이터에 왔다 갔다 하며 봐둔 미용실이 하나 있었는데,

아담한 것이, 숨겨진 고수의 집이 아닐까 혼자 상상한 미용실이었다.

아뿔싸, 미용실 안에는 두 명의 노인분들이 있었다.

한분은 디자이너, 한분은 손님이었다.

역시 독일은 장인의 나라이다.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왠지 그다음 장면이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듯 미용실을 찾지 못하자, 남편이 봐둔 집이 있다며 나와 동행해 주었다.

외관은 적당하게 보이는 듯하여,

머리를 자를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거절당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당황스러웠다.

진심인가?


우리는 이미 기존 고객들만으로도 바쁘거든,

그래서 기존고객 이외에 새로운 손님의 예약은 받지 않아

그렇지 노동자의 인권이 중요한 나라였지.

절대, 자신들의 역량이상으로 일하지 않는다.


맘이 지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헹켈미용가위와 숱가위로 내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미용실이 내 맘을 몰라준다면, 나라도 알아주는 수밖에,

숱을 치고, 자르기에 30분 정도 공을 들였다.

스타일 나름 괜찮다. 나 정말 소질 있는지도.



머리카락이 가득한 바닥을 치우고

니트에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힘겹게 뗴어냈다.

가격도 적당하면서, 머리도 감겨주고, 드라이도 해주고

내가 원하는 스타이로 잘라주면서

심지어 친절하게 손님을 맞아주는 한국 미용실은

여기 없다.


별 수 없지 않은가, 한국에 갈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