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일년에 몇차례 정도 짧거나 혹은 길게 여행을 하지 않고는 못견디는 수준이다.
여행을 떠날 때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는 순간도, 그리고 출발을 기다리며 공항 안의 커다란 유리창 앞에 앉아 탁트인 계류장에서 여유롭게 미끄러져가는 비행기를 구경하는 그 순간도 너무나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 10월말, 난생처음 회사에 일주일간의 긴 휴가를 내고 핀란드로 떠났다.
핀란드. 가본적이 있는 것도,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나라도 아닌 그저 겨울왕국, 산타와 무민이 있는 곳 정도 밖에 모르는 나라.
핀란드로 여행을 간다고하니 지인들 모두 거길 왜? 라거나 자일리톨 사러 가게? 라는 조금은 올드한 농담을 던지며 의아해 했었다.
모두 유명한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쇼핑천국도 아닌 곳을 굳이 왜 일주일이나 가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내가 여행을 가려고 했던 이유는, 유명한 관광지를 보기 위해서도, 쇼핑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너무나 쉬고 싶었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한적한 곳, 겨울을 좋아하는 내가 청량하고 깨끗한 겨울의 분위기를 마음 껏 즐길 수 있는 곳.
게다가 핀란드는 북유럽 국가중 유일하게 직항이 있는 곳이었다.
예상외로 헬싱키로 향하는 핀에어는 만석이었지만 13시간의 비행시간동안 여러 블로그 후기에서 꼭 마셔봐야한다던 블루베리주스는 마치 풍선껌처럼 달콤한 맛에 반해 두잔이나 마시고 두번의 기내식은 싹 비웠으며 나머지 시간은 영화 해리포터와 함께 꽤나 숙면을 취했다.
헬싱키에 도착하고 항공기에서 내리자마자 그 많던 사람들은 우르르 환승터미널로 몰려갔고 나와 열댓명 정도의 유럽인만이 입국장으로 이동했다.
새벽 도착 비행이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입국장은 처음이었다.
외국인 입국장은 더 한산했다. 입국하는 외국인이라곤 나와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한국인 여자 둘이 전부였으니까. 그녀들조차 입국 심사에서 여긴 스탑오버로 들르는 것뿐. 내일 다시 바르셀로나로 떠날거라고 했다. 결국 온전히 헬싱키를 여행하려고 온건 나 혼자였다. 아. 내가 정말 사람 없기로 유명하다는 나라에 온게 맞구나.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질문이 많았던 꽤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기위해 나왔을 땐 이미 내 짐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덩그러니 돌고 있었다.
출발했던 한국은 10월말임에도 여전히 더위가 남아있는 날씨였는데 헬싱키는 겨울왕국답게 공항에서부터 서늘한 추위가 느껴졌다. 얼른 캐리어에서 챙겨왔던 패딩을 꺼내 입고 시내로 나가기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이 나라는 어디쯤 나가면 사람이 보이려나?
사람 없는 곳을 찾아 왔지만 너무 아무도 없으니 마치 좀비 영화에서 나 혼자 살아남아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기분이었다.
시내로 나가는 열차의 창밖도 아직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내리니 아침 7시쯤. 15분 거리의 호텔까지 걸어가면서 그 시간까지도 해가 안떠 어둡고 인기척하나 없는 거리에는 덜덜덜거리는 내 캐리어 바퀴 소리만 울려퍼졌다.
아니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한적한 드라마를 원한거지 스산한 스릴러를 원했던건 아닌데.
괜히 무서운 마음에 거의 달리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구글맵에 의존해 가다보니 멀리 내가 헬싱키에서 지낼 호텔의 간판이 보이고 그 로비에서 나오는 불빛이 너무나 반갑게만 느껴졌다.
#겨울여행 #북유럽 #여자혼자여행 #헬싱키 #에세이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