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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Mar 01. 2017

의미를 찾아서

영화 '컨텍트'의 기분 좋은 합리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승리자다.' 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다 좋다.' 라는 말도 있다. 정말 그럴까? 내 대답은 'NO' 다.


마지막이나 끝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허무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게 결정된 미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제한된 삶 속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왜냐하면 의미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엔딩이 있는 한, 우리는 이야기의 순간마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결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삶의 의미가 삶의 엔딩과 결부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한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엔딩에 집착한다. 과연 적절한 생각인가? 적어도 행복해질 상상인가?


글쎄. 우리가 엔딩에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그 엔딩이 영원성을 담보해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흔적을 엔딩에 담는 것이다. 엔딩 이후에는 그 어떤 것도 그 끝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 수정이란 불가능하다. 변화의 주체일 우린 이미 죽었으니까!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무언가 결핍된 찝찝한 지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엔딩을 가져간다 한들, 죽고나면 말 그대로 죽은 우리에게 그 엔딩이 어떤 식으로 남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타인이 우리 삶에 여러 가치를 부여한다 한들 우리가 죽고나면 확인해볼 도리가 없다. 그건 그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해봄직한 그럴싸한 상상에 불과하다.


좋다 그런 그럴싸한 상상! 하는동안 행복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엔딩은 인생에서 오직 한 번 뿐일까? 어차피 모든 것은 눈 깜짝 할 사이 과거로 가버리는데, 삶을 매 순간 시작과 끝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달리 이해해 보는건 어떨까. 허무를 극복하는 영원성은 연속적 삶의 끝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매 순간마다 '지금' 속에 있다.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파편적인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인식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이라는 순간만을 살 뿐이라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지금'들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불멸의 상태로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변화는 지속될 지 몰라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을 따름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해피엔딩에 집착하지 않을 힘을 준다.


삶에서 의미의 단위는 삶 전체가 아니라 삶을 이루는 순간 순간이다. 과거에는 가졌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애석해할 필요가 없다. 가졌던 순간이 있었음은 그 어떤 무한함 앞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진리이며 그 가치는 시간의 흐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우리는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을 섬세하게 마무리하고자 집중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을 뭉뚱그려 이해하는 그러한 시도는 우리를 더욱 더 허무 속으로 빠트리게 한다. 30년을 사는 것보다 40년을 사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 없고 마지막에 웃으며 죽었다고 힘들었던 때가 없었다 말할 수 없으며 불행한 말년이 있었다고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부정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는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가 미래로 흐르고 있기에 미래에 가중치를 둘 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현재다.


우리는 의미를 찾는다. 의미있는 삶은 우리의 조약한 생을 위로한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좋았던 모든 것은 영원토록 좋았던 것이다. 그런식으로 기억을 가져갈 수 있고 가져가야만 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웃는 매 순간마다 승리한 순간을 갖는 것이다.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재물, 친구, 가족, 연인, 건강 등 모든 것이 그렇다. 영원할 수 없다. 죽음은 위의 모든 것을 다 뺏어간다. 그러니 뺏기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이야 말로 죽음을 태생적으로 내포한 삶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모든 것을 뺏어가는 죽음이 아니다. 가졌던 그 행복했던 순간을 허무에 매몰시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소 난잡하게 얘기했지만 하고싶은 말은 분명하다. 지금을 좋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미래의 지금을 포함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지금밖에 없다는 것. 지금은 놓쳐버린 그 많은 것들이 인생에서 전혀 부질없는 집착은 아니었다는 것. 지나간 사랑은 실패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 뿐이다. 후회도 의미 없다. 이 세상에서 우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더욱 적다. 우리는 그저 매 순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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