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또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도 삶은 계속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왜 언제나 느끼기만 할 뿐일까. 때론 한마디에 모든 삶이 담기기도 한다.
“많이도 남았네.”
아버지는 나에게 남자라면 모름지기 강해야 한다며 태권도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엄격하신 분이셨다. 작은 마을의 유지였던 당신께서는 조금의 미소도 빈틈도 없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감히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말에 토 하나 달지 못하셨다. 우리 가족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 아직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미숙했던 외로운 외동아들이었던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완벽한 아버지에게 나는 숨겨야 할 유일한 결점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최초의 시발점은 태권도였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태권도를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내 몸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런 일은 여태껏 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일은 허락 아래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태생부터 미움은 나의 몫이었다. 그 전부터 나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아이들에게 많은 따돌림을 당하고 호되게 맞아서인지 태권도장에서도 맞는 일은 익숙했다. 그렇지만 맞는건 언제나 슬픈 일이다. 아버지가 시키신 일이었으니 더더욱 슬픈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맞도록 이곳에 보내셨다! 처음에는 맞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흐르는 것이 내 일이었다. 맞고 들어온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숨기기에 급급하셨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웅크려 마음속으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을 따름이다.
태권도장 밖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나쁜 일이었지만 태권도장 안에서는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깨달아갈 무렵 무자비하게 맞던 도중 알수 없는 힘에 이끌려 주먹을 뻗어 늘 나를 괴롭히던 녀석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때의 손의 촉감과 감정의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난 이제 죽었다. 죽도록 맞을 것이다.’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쾌감이 온 몸을 감았다. ‘죽여 버리고 싶다. 이 녀석을 죽여 버리고 싶다. 이 녀석을 죽여 버리면 너무 기쁠 것 같다. 이 녀석을 죽여 버리면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 죽이자.’ 물론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 녀석도 나를 그 이후로는 잘 건드리지 않았다. 태권도가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일은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의 기쁨은 정말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쾌감을 선사했다. 이러한 열정이 발육과 맞물리게 되면서 나는 어느새 또래 중에서는 가장 몸집이 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권도 대회에 나가서 많은 상을 휩쓸었다. 태권도는 삶의 낙이었고 태권도를 통해 해방감을,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당시에는 다행히 아버지도 나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도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당당히 아들로서 인정받고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고 말씀드리면 될 일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다. 아버지도 좋아하실 줄 알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본적은 처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알 수 없는 화가 솟구쳐 오른 적도 처음이었다. 사랑을 갈구하며 들떠있었던 기쁜 몸은 이내 뜨거워져서 얼굴은 시빨개지고 호흡은 가파르다 못해 숨이 차는 지경에 이르러 간신히 억누르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가 부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너를 태권도 선수나 하라고 그런 곳에 보낸 게 아니다. 그러니 이제 태권도는 그만두고 평범한 일을 찾아라.” 아버지도 간신히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제발 다시 한 번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벼락같은 호통이 몰아쳤다.
“야 이 새끼야! 이 새끼가 어디서 말대꾸야!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집안 망신 다시키네. 엎드려 이 새끼야.”
울음이 터지기 직전인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니 모든 힘이 풀렸다. 엎드려서 엉덩이 살이 부르트도록 맞으면서 용서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 후에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로 올라와서 매우 무미건조한 회사원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한 일상이여서 숨을 쉬고는 있는 건지, 심장이 뛰고는 있는 건지 도통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싸구려 호의들이 오가는 곳에서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말이다.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는 그로부터도 한참 지나서였다. 부모님과 연락을 안한지 정말로 오래 되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니 내려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버지,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는 사람. 아버지도 아프실 때가 되었구나.'
“알겠습니다. 어머니.”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워질수록 손이 축축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걱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예전에 살았던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이 집을 판 것이 의아했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이 집을 좋아하셨는데. 어머니가 알려주신 곳은 정말로 허름하고 이상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아버지가 있다고? 고개를 숙이고 간신히 큰 몸을 밀어 넣으니 그곳에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와 그 옆을 지키는 어머니가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알던 분이 아니었다. 많이 야위어 있었는데 눈동자만이 간신히 움직여서 살아있긴 하구나 하고 알아챌 분이었다. 어머니는 굳이 자리를 피해서 나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셨다. 내가 떠난 후 아버지는 점점 삶에 흥미를 못 느끼시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지인과 불법 도박에 빠져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쇼크로 누워버리셨다는 거다. 훗. 어머니가 놀라시는 걸 봐서야 그제야 내가 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와 버린 것이다. 자리에 돌아가서 아버지 옆에 가지런히 앉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응시했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린다. 미세한 몸의 떨림도 느껴진다.
“그래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담담한 물음이었다.
“@#$%”
어머니한테 물어봤는데 아버지가 말을 하시는 거였다.
“네? 뭐라고요?”
살짝 놀랐다.
“@#$%!”
옆에서 어머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길어야 8년이라고 하더구나.”
“네? 8년이요?”
“그래...”
“...”
이번에는 웃음이 아니라 분노가 차올랐다. 너무나 순간적이라서 막을 틈도 없었다.
“많이도 남았네... 씨발”
옆에서 어머니가 놀라시고 아버지도 순간 몸을 흠칫 하셨다. 나 역시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하지만 달아오른 몸은 순식간에 누워있던 늙고 늙은 당신의 목을 졸랐다. 어머니가 말릴 새도 없는 그 순간 다시금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거다.
“미안..하다...”
“...”
손은 더 이상 맥을 못 추렸다. 온 집이 떠나가듯 소리를 질렀다. 분노 가득한 절규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함을 쳤다. 터져 나오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적 동요와 눈물이었다. 분노와 억울함과 온갖 상처로 범벅 되어 살려달라는 절규였다.
“왜 그때 그러셨어요! 제가 그때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아세요! 도대체 왜! 왜!”
얼마나 지났을까. 미련없이 뒤돌아 그 이상한 곳을 빠져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불쌍한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던, 얇은 미소 뒤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늘 눈치 보며 불안으로 휩싸여있던 소년.
아빠 나 잘했지?
그래 잘했어 우리 아들이 최고야.
그렇게도 어려웠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