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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Jul 30. 2016

<자기자신에게 고함>

삶에 대한 불편한 생각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조금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해야할 것이 없는 삶이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고, 하지 않는 잠깐의 순간에도 초조함은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릅니다. 하루종일 정말로 많은 일을 처리하고 정말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정작 진짜 생각은 하루에 채 5분을 하기 어렵습니다. 혼자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근 버스 안에서도, 힘겹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집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극에 노출시키며 정신없음을 지향하더니 끝끝내 누운 침대에서도 손 안에 쥐어진 스마트폰과 눈의 피로와 끝날 줄 모르는 하루의 공허함에 시달리다 지쳐 잠에 듭니다. 이대로 괜찮은 건지 마음 깊은 곳에서 불편함이 꿈틀거리지만, 이내금 시작되는 새로우면서도 다를 것 하나 없는 하루의 진부한 자극들에 몸과 마음을 맞기면 그러한 불편함 쯤이야 최후의 눈감는 순간까지 미룰 수 있을듯 합니다.


바야흐로 욕망 충족의 시대, 꿈이 밥을 먹여준다는 환상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좌절감에 빠트리고 꿈이 없는 사람을 절망케 하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희망고문 합니다. 번갯불로 벼락같이 달려들어 결국 타버리고 마는 벌레들의 삶과 무엇 하나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벌레의 삶이 타죽는 것이 아니듯이.


시간이 흐를 수록 생각은 점점 짧아만 가고, 아집은 굳건해지며, 모든 감흥없는 것들은 기억 속에도 미련없이 떠나가버리니, 파편적인 행복한 순간은 지저분한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밝히는 것과 같이 몽환적이기 짝이 없고 아련한 추억들은 어느새 내 삶과는 아무런 관련없는 듯한 모습으로 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내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자신을 보십시오. 몰라서가 아닙니다.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입니다. 도망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신없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없어서에요. 약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무리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자신의 삶에 동의를 구하고 합리화하며 질끈 눈감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진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권태와 고통에 흠씬 두들겨 맞은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거울을 통해 직시하십시오. 그리고 철저히 동정하십시오. 그 안에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얕은 호흡을 겨우 들이내쉬는, 어른인 척 하는 가면 뒤의 진짜 자신을 말입니다.


자신을 외면하며 꿈을 쫒은 사람은 결국 죽기 직전에 뼈저리게 후회할 것입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이 모조리 진실된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진짜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모든 인생이 한편의 거짓말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꿈이라는 것이 자꾸만 진실된 우리의 삶을 거짓으로 부족한 아류로 오해하게 만들었음을,  꿈이 나의 존재를 후회하게 만들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면서 비겁해지고 약해지게 만들었다는 걸.


꿈이 그래도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삶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순간에 우리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꿈은 욕망이 아닙니다. 충족되어야 할 결핍된 무언가도 아닙니다. 진정한 희망이자 휴머니즘입니다. 한발한발 내딛지 않고 산 정상에 오르기란 불가능한 법입니다. 자신을 서있게 하는 두 다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가 느끼는 것은 고작 자극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철저히 자기 자신이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우리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써 생생히 살아있는 느낌으로 충만해지고 모든 삶의 목적과 방향과 열정과 변화를 비로소 그 안에 제대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삶에 정답은 없습니다. 삶을 부정하는 것이 삶의 오답이 될 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도 나왔던 유명한 휘트먼의 시 'O Me! O Life!' 를 부분 인용합니다.

"오 나여! 오 삶이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 - 이것들에 둘러쌓여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네가 여기 있다는 것 - 삶은 존재하고 그게 바로 너라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


철학자 질 들뢰즈는 삶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삶은 단지 살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가책이나 죄의식, 부정을 통해 단죄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삶이 저편 어딘가에 있는 최종적인 단계를 목적 삼아, 훈육 받으며 머무는 열등한 중간 기착지 같은 것도 아니다."


무엇을 기다리시나요?

가장 소중한 당신의 삶이 이미 처음부터 당신에게 흐르고 있는데.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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