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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Apr 10. 2023

미래로 보내는 과거의 편지

시간이 지울 것들과 남길 것들

참으로 한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찌나 자신를 괴롭혔던 건지...

나는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쌓여가는 것은 죄책감과 곪아가는 마음.

사랑 하나도 건사하기 어려운 시절에,

사랑 하나의 의미도 건져올리기 어려운 계절에,

늘 저의 마음 속에서는 사랑과 도덕이 다퉜습니다.


그 싸움은 팽팽해서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었고

늘 끊어지는 것은 저의 기력과 정신이었습니다.


그건 실재하는 다툼이었지만, 뭐라 형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 자신을 제가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으니까요.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해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는 괴로운 시절이었고,

설득을 하려고 절절매는 제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제 무거운 마음이 입 밖으로 힘겹게 나왔지만

너무도 쉽사리 휘발될 때의 그 마음이란...

참담하기 그지 없지요.


어쨌든 저로부터 시작된 죄이니, 저로 매듭지어야 했는데,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용서를 받지도 못했네요.

사랑도, 도덕도 내려놓지를 못해서 죄인입니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모나서, 조금이라도 더 뻔뻔했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굳세서, 조금이라도 더 용기냈다면

마음이 편했으려나요.

좀 더 행복할 수 있었으려나요.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사랑과 도덕을 화해시킬 수 있었을까요.


이제 와서 부질 없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경험을 하고 아무리 아파도

여전히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채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쫓았던 마음에도 어떠한 결함과 기이함이 있었고,

제가 부정한 마음에도 어떠한 어색불가해함이 있었어요.


앞으로 더 좋은 인연이 생기리란 위로들이 떠오르네요.

정확히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건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고

 무의식에 달린 일이기도 하니까요.


좋은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일차적 관문을 지나고,

그 좋은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이차적 관문을 지나도,

그 사람을 내가 좋아해야하는 최종 관문을 넘을 수 없다면,

모든 것은 허사가 되니까요.


그냥 누군가가 저를 다시 눈멀게 해주기를 바라며,

눈이 멀어도 좋으니 나를 책임져주었으면 싶습니다.


역시나 이것이 제가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 여겨집니다.

구원. 구원받고 싶습니다.


눈만 멀게 하면 안됩니다.

그 십년의 지옥을 막 나온 참에

희망고문을 받다가

다시 새로운 지옥으로 밀려난 처지이니


혹 내가 좋아진다면,

제발 나를 포기하지를 마시길.

기필코 내 눈을 멀게 해주시길.


그런데도 내가 또 습관처럼,

사랑이 아니라 도덕을 하는듯 하면,

멀리멀리 도망가 주기를.


그것은 당신이 내 눈을 멀게 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고,

내가 다시 좋은 사람이려고 애쓰고 있다는 의미이고,

다시 나는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니...


사랑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너무 많다고,

결혼은 그냥 하는 거라고,

세상은 저의 사랑에 대해 비난 일색이지만...


저는 그런 마음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이제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말하고 싶습니다.

설레고 뜨겁고 벅차는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에게도 그것이 무엇보다 좋겠지요.


그런 사랑을 쫓다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저는 이제 더 닳을 마음이 없어서 편안할 것 같아요.

저는 기꺼이 같이 파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물질 따위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냥 저를 주춤거리게 하지 않는

저의 마음이 불완전 연소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없다고 느껴지

흘러서 넘치는

그런 사랑이 가득한 저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저를 만들어주는 당신이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별로 기대는 안됩니다.

이미 닿을 수 있는 사랑의 끝까지  닿아 본 기분이에요.

그 사람이라서 그 영혼이라서 그 존재라서 좋았던,

모든 것이 대체 불가능한,

그 사람의 고향, 성격, 외모, 배경, 습관, 추억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담았던 내 마음의 서사,

심지어 그 사람의 이름, 한글의 자음과 모음 마디까지.


저를 구원해주었을지도 모르는 사람.

그러나 돌이켜보면 결국 내 모든 것을 파괴한 사람.


그 사람을 복제하지 않고서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고서는,

제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이것을 어떻게 무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모쪼록 희망 가득한 미래가 펼쳐지기를 바라며...

그러나 설사 그렇지 않게 되더라도...

그래서 더 참혹한 미래와 지옥이 마련되어있고...

그곳에서 타인의 비난과 저주를 폭우처럼 맞고...

제 자신이 용서가 안되서 죽이고 싶어도...

혹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해버리더라도...

모든 것이 용서받을 기회 없이 매몰되더라도...


그것도 그냥 무수한 인간들이 망가지고 실패하듯

한 명의 인간이 소멸하는 과정이라 그저 관망하기를.


내일 길을 가다 갑자기 차에 치여 죽듯이

그런 허망한 세상사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기를.


그냥 죽으면 그만.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들도 죽으면 그만.

그렇게 죽어버린 것들 위로 죽음이 계속 쌓이면 그만.


그냥 모든 것이 덤이고 한 편의 연극이라 받아들이기를.


아 인생 재밌다. 아 이 연극 재밌네.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안될 것이니.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할 것이니.


이 타이밍에는 이 구절이 좋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러나 더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해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라...

시간이 갈수록 그 진의가 점점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문장으로 오늘 생애 첫 10km를 달렸습니다.

달을 바라보며 달을 쫓아가는 기분이 꽤나 좋더군요.


어쨌든 저는 살아있습니다.

어쩌다 또 살아남아 버렸습니다.

살아 있으니 또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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