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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Jan 17. 2022

산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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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s es sein? (꼭 그래야만 하는가?)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던진 화두다. 니체의 영원회귀설로 시작을 여는 소설은 삶의 무게에 대해 질문한다. 삶은 무거운가, 가벼운가? 운명인가, 우연인가? 의미있는가, 의미없는가?

Es muss sein! (꼭 그래야만 한다!)

강한 확신으로서, 명확한 근거로부터, 이미 펼쳐진 과거의 행적으로서 드러나는 결과다. 무한한 가능성이 하나의 현실로 수렴한다.

삶은 Muss es sein에서 Es muss sein으로 나아가는 과정.

방황은 답을 찾기 위한 필연적인 고난이다. 아무리 많은 변명을 늘어 놓아도, 무수한 번뇌와 괴로움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답은 위로로 주어지지 않는다. 가슴속 뜨거운 번뇌가 모두 재가 되어 잠잠해질 때까지 태워야한다. 타는 가슴으로 살고 또 살아야 한다. 무수한 후회의 언덕을 넘고 또 넘어야 한다.

Conatus (코나투스)

라틴어 코나투스는 노력하다로 번역되는 동사 conor로부터 파생된 개념으로서, 철학자 스피노자의 핵심어로 모든 유한한 양태들의 본질을 뜻한다. 그리고 그 본질은 노력, 충동, 성향, 경향...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어떤 것이 계속적으로 존재하려고 하고 스스로 발전시키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발버둥은 코나투스의 발현이다.

Arete (아레테; 탁월성)

아레테는 어떤 종류의 탁월성 혹은 도덕적 미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고대 그리스 윤리학에서는 참된 목적이나 개인의 잠재된 가능성의 실현과 관계된 최상의 우수성을 가리킨다. 코나투스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면, 아레테는 삶의 방향을 밝힌다. 한자로 말하자면, 자아실현쯤 될까.

Übermensch (위버멘쉬; 초인)

네이버의 설명: 위버멘쉬는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신체적 존재이며,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이자,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 개념은 힘에의 의지와 허무주의 그리고 영원회귀 사유와의 정합적 구도를 완성시키는 매개개념으로 사용된다. 쉽게 말해서, 언제나 웃을 수 있는 무적의 인간이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코가 깨져도 승리하는 인간이다.

Muss es sein?(가능성)으로 태어나, Es muss sein(역사)으로 죽어가는 삶 속에서 Conatus로 자신을 보존하고자하는 강한 욕구를 느끼고, 보존의 방식으로 Arete를 기준삼아 스스로 나날이 탁월해져서 마침내 Übermensch가 된다. 그렇게되면?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를 깨달아 우주 생명의 섭리를 이해해서, '생로병사'의 필드에서 탐진치(貪瞋癡; 탐욕,분노,무지)가 일어나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고 성불하고 마침내 열반의 낙원세계에 이른다.

이처럼 번지르르하게 써도, 말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오고, 인생에 NG는 있어도 재촬영은 없다. 쪽대본도 부지기수. 그마저도 순간의 격정으로 줏대없이 뒤집기를 수차례. 수많은 인연의 엉킨 실타래 앞에 인간은 하나의 말일 뿐이다. 실패의 동의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곧 실패 덩어리고 인생은 실패가 덕지덕지 붙어 만들어지는 위태로운 작품이다. 그럼에도 만들어지는 영화의 필름이 끊기는 날까지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 쓰고 또 쓴다. 풋내기처럼 내뱉는다. 반드시 행복해지겠다는 다짐. 부디 럭키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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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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