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바람을 느낀다. 그 바람 속에는 스쳐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회상을 일으키는 향수 같은 것들이 조금 섞여 있다. 그래서 봄이나 가을이면 옛 친구나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청승을 맞이하기도 한다.
오늘은 문득 두 명의 친구가 떠올랐다. 참 좋아하던 A라는 친구가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늘 나를 웃게 해 주었고 내 고민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던. 우유부단하고 성격의 나를 답답해하며 이런저런 충고를 늘 해주었고 나 또한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A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뒤가 찝찝한 기분이 오래도록 남았다. 하나의 사건을 이유로 그 친구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전혀 교류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그 관계의 단절에 대한 의미를, 다른 B라는 친구에게 받았던 충고에서 깨닫게 되었다.
A와 B는 똑같이 나에게 충고를 잘해주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A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나빴고 B를 만나고 돌아오면 마음에 늘 충만이란 감정이 느껴졌다. A에겐 고약한 버릇이 있었는데 예전에 내가 했던 실수와 잘못을 만날 때마다 나에게 상기시키는 버릇이었다.
'예전에 너 그랬잖아' 하고 말하는 것은 늘 A의 입에 붙은 말이었다. 그런데 B는 서로 오래 지낸 만큼 알고 있는 나의 비밀, 실수를 단 한 번도 입에 꺼내 비난하는 적이 없었다.
A와의 만남에선 난 꼭 한 번은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움을 느껴왔다. 나조차도 기억하기 싫었던 일을 A는 늘 아무렇지 않게 말로 꺼내놓으며 나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A는 자신의 친구들의 사생활에 대해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떠들어 놓기도 했다. 그러다 A를 걸쳐 아는 다른 친구를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녀도 나도 전혀 교류가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의 눈빛은 '나 네가 겪은 그 모든 일들을 알고 있어'라고 쓰여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듯, 그들도 나에 대해 다 알고 있겠구나 라는 것을.
지금까지도 나를 늘 귀하게 대해주는 B는 어찌 보면 A보다도 서로의 못볼꼴을 다 본 친구지만 단 한 번도 예전의 잘못을 끄집어 내 나를 부끄럽게 만든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난 좀 그렇잖아...'라고 자신 없는 말을 하면 내가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도록 일으켜 도와주려 애를 쓴다. 그러면서도 이건 좀 아니다 싶으면 내가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냉정하게 말을 해준다. 하지만 B가 그런 충고를 할 땐 자기 자신도 그 말을 아주 어렵게, 아프게 한다는 것이 나는 느껴진다.게다가 B와 C는 나와 셋이 함께 친하게 지내지만, 내가 C에게 하지 않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B를 통해 C에게 거쳐간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장점이 많고 또 내가 좋아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눈 친구라고 하더라도 그 친구를 만나고 돌아올 때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진다면, 그는 나에게 좋은 친구는 아닐지도 모른다.
친구는 내 잘못을 비난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날반찬이나 간식 삼아 떠들어 놓지도 않는다. 충고와 비난은 엄연히 다르다. 충고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뜨이지 찝찝함이 남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A에게마찬가지로 난 좋은 친구가 아니었기에 만날 때마다 그런 찝찝할 말들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에 있어 완벽한 일방적 잘못은 없을 테니까. 내가 이렇게 A와의 지난 우정을 돌아보게 되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이 A는 날 친구도 아니었다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 적어도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A와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정리된 지금, 난 A와 A의 주변인 누구도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반찬삼아 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A와의 관계가 끝난 것이 오히려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는 것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