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파 소아과에 갔을 때였다.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진료를 본 다섯 살 즈음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진료실을 나오며 간호 선생님에게 반지를 달라고 했다. 진료를 잘 받으면 아이들에게 주는 포상인가 보다. 간호 선생님이 하나만 고르는 거야, 하며 색색깔의 반지가 꽂힌 케이스를 내밀었는데, 욕심이 많은 아이는 반지 한 개가 아닌서너 개를 작은 손으로 성큼 집어냈다.
간호 선생님이 '반지는 하나만...' 하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는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았고, 그런 아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아이의 엄마는 뻔뻔한 대답을 늘어놓고 아이와 함께 돌아섰다.
"대신 다음에 올 때 안 받을게요. 그럼 되죠?"
모녀가 돌아가고 데스크의 선생님들이 " 올 때마다 저래." 하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난번엔 이 병원에 와서 반지를 고르는 아이에게 " 누구나 딱 하나씩만 갖도록 되어있는 거야. 그렇게 많이 갖겠다고 떼를 쓰면 엄만 단 하나도 허락해 줄 수 없어. 자, 딱 하나만 고르고 감사합니다. 인사해야지?" 하고 단호히 말하는 엄마를 본 적이 있어 오늘의 이 신선한 모녀의 모습이 오후 내내 내 뇌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뭐 그깟 반지 몇 개일뿐인데 너무 의미를 부여하여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모든 일의 시작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엄마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가. 그 힘든 임신과 출산을 넘어 신생아를 돌보고 키워내는 일은 세상무엇보다 고귀한 돌봄이다. 한 생명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인내를 넘어서야만 비로소 아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불러주니까.
하지만 막상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나면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설 때도 있다. 사소한 내 행동 하나하나를 아이가 보고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이다.그러니,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그깟 장난감 반지 몇 개쯤이야' 하는 행동은 엄마가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허락한 반지 몇 개가, 결국 아이를 해치는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