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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pr 16. 2021

에르메스 다음은 무엇일까요?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몇 년 전 육아 때문에 퇴사했던 상사가 회사 이전을 기념하여 놀러 왔다. 성품이 조용하고 무던한 편이라 직원들 모두 좋아하던 사람이다. 그녀에겐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명품 가방을 사 모으는 것이다. 


예전엔 그런 그녀의 명품 가방들을 보면 언제나 입이 떡 벌어지곤 했다. 오늘은 샤넬, 내일은 루이뷔통, 그제는 또 다른 샤넬이 그녀의 손에 늘 들려있었다. 그녀가 퇴사한 후 밖에서 다른 직원들과 한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때도 루이비통의 초고가 라인의 신상 백을 들고 왔었다.


그녀의 가방 사랑은 그래서 놀랍지도 않을 정도였다. 뭐 자신의 능력으로, 남편의 능력으로 비싼 백을 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하지만 조금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방을 들고 나오는 그녀의 태도였다. 고가의 가방을 들고 나와서도 '우와 이 방 뭐예요'  하고 묻는 이들에게 조금 민망하다는 듯한 겸손한 태도가 나는 더 의아했다.


비싼 가방을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단순히 그 디자인이 예뻐서만일까? 아니면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구인 걸까? 명품백을 들고 수수한 태도를 하는 그녀의 생각을 나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흘러 만난 그녀의 손에는 이제 에르메스가 들려있었다.



"와, 이 가방 보기 힘든 가방 아니에요?"


누군가의 질문에 그녀는 또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냥, 들기 편해서... 샀어요."


그녀는 정말, 정말 그래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대답이 더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가방에 걸맞은 자랑을 좀 했다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들기 편해서 천만 원이 넘는 가방을 사서 오천 원짜리를 사듯 수수하게 표현하는 도는 더한 질투를 유발했다.


어쩌면 이런 마음조차도 나보다 잘 입고 잘 사는 이를 보는 자괴감일까. 이 되자 내 옷이며 가방이 죄다 낡은 것들 뿐이라 무언가 사고 싶기도 하던 터였다. 나는 그녀의 에르메스 백에서 나의 물욕을 읽었다. 좋은 것, 더 좋은 것을 사고 싶고 원하는 그 마음. 누군가의 손에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쥐어져 있을 때 질투하는 그 시선. 제는 그녀의 태도가 아니라 바로 나였.


남의 손에 쥐어진 좋은 가방을 내가 갖게 된 그다음이 문득 궁금해졌다. 갖고 나면 행복해질까?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현실과 이상은 어느 정도의 줄을 맞춰야 하는데 가방이 몇백, 몇천이면 뭐할까. 집도 차도 통장잔고도 바뀌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그녀는 에르메스 다음엔 어떤 가방을 또 사게 될까? 나는 다음번에 그녀를 또 만나도 정말 하나도 부럽지 않을 수 있을까?

검은색 에르메스 가방의 모습에서 가오나시의 모습이 슬쩍 떠올랐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자신의 얼굴을 감춘 채 가면을 쓰고 물질과 탐욕으로 끝없이 채워갔던 가오나시가. 쩌면 우린 서로 다른 허기를 가진 가오나시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사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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