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의 요즘 최애 관심사는 바로 '다가오는 20대'다. 대학생 되면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하고 적어놓은 버킷 리스트도 셀 수가 없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해야 20대를 더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다는 엄마의 뼈아픈 조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철없이 어른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가 귀여우면서도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공부 하란 잔소리가 나 역시도 싫었던 그때를 회상해 보면,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 가슴속 쓴 잔소리는 삼키고 또 삼켜야 한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자살 예방 교육을 들었거든? 그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너무 재미있었어. 지금 입시 준비하느라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죽고 싶다 하더라도 좀 더 힘을 내래. 왜냐면 다가오는 20대엔 정말 재미있고 '음탕'하게 놀 수 있다며. 온갖 합법적이고 재미있는 것들을 맘껏 할 수 있으니까 죽고 싶어도 잘 참고 20대를 즐겨보라고. 너무 웃기지 않아? 근데 그 말에 애들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 거야. 음탕이란 단어의 효과가 그렇게 크다니! 흐흐흐. 아이와 함께 실컷 웃다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20대에 했던 온갖 방황들과 재미들은 합법적인 동시에 음탕스럽기도 했다. 왜냐면 어엿한 성인이기 때문이다.20대를 기대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나의 그때는 어땠을지 생각에 잠겼다.
지금에 와서야 재미있다 생각이 들지만, 사실 난 그때 늘 우울했다. 특히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 싫었다. 무언가를 찾아 바쁘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내야 마음이 편했다. 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절망감에 빠져 힘들었다. 좋은 대학을 다니는 것도, 그렇다고 뚜렷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송국 막내 작가 생활은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고, 응모하는 신춘문예는 모두 탈락뿐이었던 암울했던 20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재미없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그땐 꿈이 있었다. 일과 사랑 모두 막연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꿈이 있었고 언젠간 글도 꼭 잘 써서 해내리라 생각했다. 20대는 그래서 아름답다.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긴 연필 한 자루가 손에 쥐어져 있으니까. 이제 그 연필을 반쯤 써버린 40대가 되니까 참 암담하다. 언제 닳아버릴지 모르는 연필 한 자루를 위태롭게 쥐고 있는 꼴이라니.
후회가 된다. 그 20대를 좀 더 후회 없이 마음껏 더 음탕하게 보냈다면 어땠을까 하고. 내가 가진 그 긴 연필로 어떤 그림이든 정말 마음껏 그려냈다면.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자유롭게 살았다면. 아이의 선생님이 재미와 상상을 좀 더 보태 말씀하신 '음탕하게 놀 수 있어'는 사실, 음탕이라는 그 글자의 본질보단 20대라는 어린 성인의 자유를 강조하신 듯하다. 입시를 준비하는 지금이 너무 괴롭고 힘들더라도 좀 더 기다리면 자유가 찾아온다는 말을 유혹적으로 하신 것뿐이겠지.
그래서 아이가 부디 엄마가 하는 모든 말을 뒤로하고 '음탕'이란 단어 하나에만 꽂힌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 희망이라도 붙들고 열심히 공부해 주길 바라는엄마의 마음이 어쩌면 더 음탕한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