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그저 안부를 묻는 사소한 전화였을 뿐이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이들은 잘 큰지, 아프거나 바쁘진 않은지, 코로나는 조심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들로 채워진 통화였다. 사실 오빠에게 전화가 오면 늘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일을 하다 손가락 하나를 잃은 뒤로 오빠의 자신감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일 것이다.
생산직에 근무하는 오빠는 손을 다쳤던 회사엔 더 다니질 못했다. 사고가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같은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끝나지 못한 재활치료가 남았지만 산재보험은 그리 오래 보장되지 못했고 보상 액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오빠와 안부전화를 주고받으면 마음이 아프다. 잘 지내도 잘 지내는 것일까? 아닐 것 같다. 신체의 한 부분을 잃은 그 상실감은 안팎으로 많은 상처를 남겼다. 새로운 회사에 면접을 보고 출근을 했다가도 일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였고 오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오빠에겐 새로 생긴 신분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장애인 등록증이었다. 그걸 처음 보던 날,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나는 오빠의 장애를 인정해 버리고 받아들여 버렸다. '손가락이 없으니까 불편한 거다'는 것쯤은 서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통화는 서로의 건강 걱정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허리가 많이 아팠던 사람인데 통화 중에 내 허리를 걱정하는 오빠에게 나는 몹쓸 말을 던져내고 말았다.
"나야 허리병신인 거. 오빠도 잘 알잖아. 늘 아프지, 아픈데 그냥 이대로 사는 거지 뭐."
내 건강을 걱정하는 오빠에게 무심코 뱉어버린 '병신'이라는 말이, 뱉음과 동시에 핸드폰에서 떨어져 내 가슴으로 박혀 들어오고야 말았다. 장애가 생겨 한이 맺혀버린 사람에게 그렇게 쉽게 아무 말이나 뱉어버리다니 생각도 없는 것.내가 뱉은 말이 다시 상처가 되어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오히려 오빠는 그래도 몸 관리 잘하고 늘 조심하란 말로 날 위로하며 전화를 끊었다. 생각 없이 뱉은 말에 상처 받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더 신중하고 더 생각하라고, 나는 나를 채찍질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 내가 만나는 그 누구에게도 적용되어 다신 내가 뱉은 말에 스스로 상처 받지도, 또 주지도 말아야지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