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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Jun 29. 2021

마흔이 넘어 친구를 차단했다.

또 그녀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가 없었다. 두 달 전, 한 달 전에 왔던 전화에 상냥하고도 친절하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자'라는 대답을 했던 터라, 이번 전화엔 딱히 거절할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러웠다. 전화 진동이 계속 울렸지만 나는 끝내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직장에서 만났던 그녀와 내가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활동적이던 그녀와 소심한 나는 친해지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이미 다른 직원들과 두터운 친분을 가진 그녀였고 나는 어쩌면 그녀와 조금은 억로 친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기혼자였던 나와 미혼이었던 그녀는 그래도 이런저런 관심사를 함께하며 잘 지냈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보면, 그 잘 지냈다는 말속엔 그녀를 내가 잘 챙겼다는 의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가게를 차렸을 땐 가서 밥을 사주고 화분을 들고 갔고 보험사로 이직했을 땐 보험도 들어주었고 결혼을 했을 때도 또다시 가게를 차렸을 때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챙겨주었다.

그러나 또다시 그녀가 화장품 사업을 한다며 연락이 왔을 땐, 나는 거의 우리 관계에서 녹다운 상태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까지 너에게 '해줘야만 하는 거지?'라는.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날 찾아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sns를 통해 잘 보고 가끔 톡을 나누다가 급작스럽게라도 만나 차 한잔이라도 했던 사이라면 난 그녀의 전화를 차단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만 이번 만남은  뭐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결론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도 이번엔 오기가 났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테다. 하는.


이젠 굳이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의미 없는 만남을 지속하기는 싫다. 예전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것이 슬프고 두려웠다. 혼자만 남겨지는 것 같고 나만 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일방적인 우정인데도 놓지를 못했다. 친구에게 매정하고 나쁜 아이로 기억되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나의 일상과 에너지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해봤자 소용없었고 돌아오는 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부재중 전화 1을 눌러 번호를 차단했다. 이번엔 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더라도 꽤 괜찮은 선택일지 모른다는 긍정의 마음이 피어났다.


그렇게 무의미했던  한 명을 떠나보낸 뒤 나는 평온함 한 개를 습득했다. 차단은 처음이었지만 좀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 입가엔 은근슬쩍 복수의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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