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일 차.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날이었다. 14년간 일하며 내 다리 한쪽을 무겁게 짓누르던 근면과 성실 책임감이란 족쇄가 다 풀린 날이었으니까.
그러나 퇴사자는 생각보다 개운하지 않았다. 뭐지? 이 낯선 느낌은.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조금 황당했다. 오전 내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약간의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오후엔 회사에서 후임자에게 전화가 와 매우 미안해하며 업무를 물어보았다.
'그럼 그렇지!'
나는 입가에 얄궂은 미소를 띠며 전화를 받았다. 아직은 내가 필요할 텐데. 내 빈자리를 느끼고 있을 거야. 질척거리는 감정이 들어 나 자신에게 놀라고 말았다. 퇴사자는 이렇게 이별이란 단어에 미련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퇴사는 어쩌면 이별과 많이 닮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헤어져야 하는 사이인데,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라 이별을 선언했고 또 그걸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오래도록 나를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 한 번쯤은 나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을 퇴사자는 가지고 있었다.
내가 퇴사를 선언했을 때도 그랬다. 부러 나를 잡지 못할 커다란 이유를 대며 퇴사를 선언했지만 한 번은 나를 잡길 바랐는지도. 너 아니면 안 된다고, 너여야만 한다고 모질게 뒤돌아서는 나를 한 번쯤은 잡아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모두 결국엔 남이었고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끝이었다. 끝은 그다음을 두고 있지 않았고 난 이제 이 이별을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했던 이 이별을.
퇴사를 하며 난 또 한 번 나에 대해 알아간다. 예전에 사랑했던 이들, 친구들과 헤어지면서도 난 늘 힘들어했었다. 오래 두었던 마음을 천천히 주워 담으며 길게 아파했다. 그게 나란 사람이었다.
가끔은 이런 내가 참 싫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싶다. 나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인 걸. 정이 많고 좀 떼기도 힘들어하는 사람. 그게 뭐 어때? 하고 생각한다.
퇴사와 이별은 이토록 비슷한 모양이었다. 퇴사 후에 남은 이 감정은 수습을 하려면 조금은 더딜 것이다. 14년간 두었던 나의 마음이 어찌 한순간에 떼어질까? 오늘은 이만큼 그리고 내일도 이만큼씩 난 한걸음 한걸음 더 물러나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