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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ug 25. 2020

2002년의 젠더, 2020년의 젠더

또 다른 18년 후를 기약하며.

2020년 서울 국제도서전X브런치 공모 <XYZ;얽힘> 당선작입니다.




2002년, 부푼 꿈을 안고 방송작가로의 첫발을 내디딘 지 3개월 즈음이었다. 나는 의학 다큐멘터리의 보조 작가 역할을 부여받고 새로운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의 주제는 ‘트랜스젠더’였다. 한창 하리수라는 트랜스젠더가 방송가를 뒤흔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 생소한 '제3의 성' 무엇인지 몹시도 궁금해했다. 남자인데 성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고 여자가 되었다니. 방송 소재로 화제성이 충분했다.

보조작가였던 나는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며칠 밤샘의 노력 끝에 트랜스젠더가 되었다는 한 남성, 아니 여성을 섭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성이었을 땐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결혼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외출하는 날이면 혼자서 아내의 옷을 입고 아내의 구두를 신고, 아내의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는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며 살았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것을 보았고, 아내는 남편이 미친 것 같다며 펑펑 울며 시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어머니와 아내 두 여자는 아들이자 남편었던 그녀를  돌려놓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귀신이 들린 것이라며 굿판도 벌여보았다. 러나 이고 남편이었던 그녀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끝내 자신의 의지대로 여성이 되었다.


그녀를 만나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나조차도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2002년 대한민국의 이십 대 초반 여성에게도 트랜스젠더란, 아주 몹시도 생소한 ‘성’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위해 취재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더 다양한 성의 개념에 가섰다.

그녀를 만나러 갔던 날, 그녀의 옆에는 함께 나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마르고 키가 컸지만 소년의 느낌이 있었고 미소 짓는 얼굴은 여자같이 보였다. 남성의 성기를 갖고 있지만 외모는 여자였고 수술은 돈을 모으는대로 할 것이라 했다. 터뷰가 끝난 뒤 당시 유행하던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클럽의 잠입 취재가 이어졌다. 그곳에는 연예인 같은 외모의 트랜스젠더들로 넘쳐났다. 재가 끝나고 돌아오던 새벽길, 어두운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내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내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들의 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억을 더듬어 내가 남자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지도 떠올렸다. 그날, 나는 내가 가진 성적 고정관념이 얼마나 좁은 것인지, 처음으로 한계를 느다.


거의 18년이 다 된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방송은 의학적인 규명을 위해 트랜스젠더를 ‘태생적 결함’으로 규정했다. 태아가 성별이 정해지는 어떤 시기에 산모에게 생기는 치명적 스트레스 혹은 신체적 문제가 태아의 성적 분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지었던 것 같다. 자신들이 어떠한 결함으로 인해 생겨난 종족이 아닌, 그저 성적인 ‘선택’을 했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비치어지기 원했던 출연자는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많은 실망을 했다.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였던 나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 어떠한 결정권도, 힘도 없었기에 그녀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미안함은 가슴 한구석에 빚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가끔 티브이에 나오는 다른 트랜스젠더를 보면 궁금해진다.

내 기억 속 그녀는 참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터뷰 당시 만났던 그녀의 주변 친구들은 그녀가 남성의 삶을 포기하고 여성이 되었을 때도 그녀를 변함없이 지지했었다. 더 이상 남편이 아닌 ‘여자 친구’가 되었어도 한때나마 자신의 아내였던 여성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지니고 살피던 그녀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저 남자로 남아 살았어도 참 괜찮은 인생을 살았을 것 같았던 한 명의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남자로 살며 스스로를 감추고 괴롭게 사는 것보다 여자로 살며 떳떳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는 솔직히 사회인, 아들, 남편 모두를 버린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아픔을 혼자 끌어안고 여자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한 번도 여자가 아닌 나의 모습을 상상한 적 없던 내가 그녀의 마음을 알리 없었다. 래서 그녀를 인터뷰하며 아, 그렇군요. 혹은 네, 많이 힘드셨겠어요.라는 말도 했지만 그건 실한 마음은 아니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그녀를 존재 가능한 하나의 성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그 질문에도 나는 역시 진심으로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염색체를 성의 기준으로 한다면 남성은 XY, 여성은 XX니까 당신은 남성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반면, 성의 기준을 ‘외형적이고 내적인’ 기준으로 한다면 그녀는 확실히 여성임에 틀림이 없다. 지만 렇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분홍색을 좋아하고 힐을 신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우리는 성에 대한 어떠한 기준을 가져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조물주는 남성과 여성을 나누었고 지금 우리 사회에는 대부분의 남성과 대부분의 여성이 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는 남성의 모습을 한 여성도 있고 여성의 모습을 한 남성도 있다. 여성의 모습이지만 자신이 남성이라 믿는 이도 있고 남성의 모습이지만 자신이 여성이라 믿는 이도 있다. 여성이지만 여성을 사랑하는 이도 있으며, 남성이지만 남성을 사랑하는 이도 있다. 또 사랑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성 구분을 짓지 않는 이도 있다.

하지만 2002년의 그때나 2020년인 지금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성을 구별 지을 수 있는 건 사회가 아닌, 타인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자신을 남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녀를 ‘그’로 바라봐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여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또 그를 ‘그녀’로 바라봐 주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나는 사람이에요.’라고 누군가에게 인지 시키지 않아도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과 같이 생각하며 말이다.


그림 by J-H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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