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 Aug 29. 2020

경비아저씨와 담배 그리고 고양이

우리 좋은 마음만 해요.

매일 아침 6시 40분이면 집을 나선다. 근하기 위해서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출근길이지만, 이 시간에는 나서야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지하철과 버스는 아침부터 나의 온 기운을 앗아간다. 코로나 때문에 두려운 마음도 생긴 요즘, 웬만하면 한적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나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고.

그런데 아파트 입구를 나갈 때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하나가 생겼다. 경비 아저씨 때문이다. 아저씨는 하필이면, 내가 출근하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매일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아저씨와 나의 거리는 약 5미터. 그나마 바람이 동서 향으로 불 때면 아저씨의 담배냄새를 피할 수가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100퍼센트 직격타. 깨끗하게 씻고 출근용 화장까지 마치고 나와 새벽 공기를 마시며 발걸음 가볍게 출근하는 나의 코끝에 아저씨의 담배연기가 뿌려진다.


하... 아저씨... 담배를.... 왜. 지금 여기에서!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저씨의 담배 테러를 당하게 되니까 나도 슬슬 부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관리 사무소에다가 확 민원을 넣어버려? 저 아저씨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침마다 너무 불쾌하다고 말이야.


하지만 고민 끝에 나는 아저씨에게 직접 말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담배 문제가 관리사무소를 거친다면 아저씨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음이 넓은 내가 한발 양보해 아저씨에게 그냥 솔직히 직접 말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날도 나는 아침부터 아저씨의 담배 향기에 흠뻑 취해 얼굴이 푸르르 익어서는 아저씨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출근을 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엄연히 관리비를 내는 입주민인데 말이야. 내 권리를 주장하겠어! 마음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강한 어조의 말들을 생각해내 퇴근길에 아저씨에게 직접 말을 전하기로 다짐을 했다.


아저씨, 제가 아침마다 출근할 때 아저씨가 피우시는 담배 연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왜 꼭 그 시간에 담배를 피우시는 거죠? 그리고 여기는 입주민들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담배 피우시면 안 되죠.


퇴근길, 정류장에서 이 말을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연습했는지 모른다. 버스에서 내려 경비실을 향해 걸었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져 갈수록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유. 떨려라. 만일 아저씨가 화를 내면 어쩌지? 그런데 막상 경비실에 다가갈수록 난 마음이 비장해지기는 커녕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그건 바로 경비실 옆 귀퉁이에 태연하게 누워있는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 세 마리 때문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격렬하게 미워했던 경비 아저씨는 경비실 한쪽 울타리 안에서 몰래 고양이를 돌보는 중이셨다. 내가 그렇게나 키우고 싶어 하던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말이다. 그것도 꼬물거리는 아기 고양이 세 마리를 포함해 말이다. 아침마다 담배로 나를 괴롭히던 경비 아저씨가 저 예쁜 것들을 돌봐주고 계셨다니. 아저씨는 더 이상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천사였다. 담배 피우는 천사. 

다음날부터 아침에 출근하며 담배 피우는 경비 아저씨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아저씨는 여전히 담배를 태우고 계셨지만, 경비 초소 구석에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조심 태우고 계셨다. 다만 그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나에게 아주 조금 날아왔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불쾌한 냄새지만, 저 담배를 태우는 동안 연기에 스트레스를 함께 날려 보내고 있을 경비아저씨의 마음이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도 출근을 하고 있었지만 아저씨도 출근을 해 일하는 중이었다. 아저씨가 밤새 우리 아파트 단지를 순찰하고 피로를 잊기 위해 태우는 그 담배 한 개비 정도는 나도 참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나는 단 10초 정도 숨을 참고 그곳을 지나기로 했다. 경비 아저씨의 쉬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예쁜 꼬물이들을 돌봐주는 아저씨의 쉼을 위해서. 대신, 매일 퇴근하 나는 고양이들을 숨어 지켜보며 잠시의 힐링을 할 수 있으니 그냥 내 10초의 숨을 아저씨에게 내어드리기로 했다.


담배 피는 천사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