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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Sep 09. 2020

새치기를 했어도 당신이 괜찮습니다.

우리 좋은 마음만 해요

저녁 7시에서 7시 30분 사이. 지옥의 시간이다. 퇴근 후 1호선 역 앞의 시외버스 정류 장 앞을 걸으면, 마치 전쟁통의 아비규환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정류장 바닥 표지판 위로 족히 50미터 가까이 되는 사람들 겹겹이 지어 있는 그 어지러운 모습이란. 

바로 옆 핸드폰 판매점에선 늘 남성 듀오의 소몰이 창법 이별노래가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20대로 보이는 남녀 커플은 마치 전쟁 속 사랑을 피우듯 다른 이들의 시선일랑 무시하고 한 몸을 이뤄 서있기도 하고, 하루 일과를 보고하는 듯한 여자의 통화 목소리는 가게의 노래보다 더 크게 울린다.  

만일 이것이 아침 풍경이었다면 바닥에 버려진 휴지처럼 미간이 찌푸려졌겠지만, 다행히도 버스만 오면 곧 이곳에서 벗어나 나의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에 기꺼이 참을 수가 있다.


그래. 다들 집을 향해 가는 것이겠지.


집이라는 나만의 안식처로 가는 기대감은 지친 두 다리를 이끈다. 집에 가봤자 금덩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셰프가 스테이크에 캐비어를 얹어 줄 것도 아니건만. 이상하게 우리 집이라는 세 글자는 정겹고 따스한 모양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늘은 일단 집에 가서 어제 먹다 남긴 육개장을 다 먹고, 서둘러 씻고 누워 드라마를 봐야지. 선풍기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제철인 무화과도 배가 터지게 먹을 거야. 그리 거창한 계획도 아닌 것들이 루에 눌려  죽은  긋하게 만든다.

어쨌든 오늘 하루를 끝냈다는 안도감.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 수요일 그렇게 곧 주말이 되어간다는 건, 내가 크게 무언가를 결심하지 않더라도 나를 이끄는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집에 가는 그 정류장의 긴 줄이 아득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곧 우리 모두 버스를 타고 이곳을 벗어날 것이 분명하니까.


그날도 정류장에 줄을 서고 있었다. 유난히 줄이 길고 긴 금요일 저녁이었다. 버스 두대는 내 앞의 사람들을 싣고 갔고 이제 내가 다음 버스에 오를 차례였다. 그런데,  50대로 보이는 몹시 후덕한 집의 아주머니 한분이 어슬렁어슬렁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걸어오더니 내 앞에 한 발짝  어슷하게 서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아줌마가 뭘 어쩌려고 여기 서있는 거지?


버스가 곧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 아줌마가 오른발을 휙 하고 잽싸게 버스에 올렸다. 나뿐 아니라 뒤에 길게 줄을 지어 서있는 다른 이들도 너무 깜짝 놀라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아줌마는 버스에 올라 버스 명당이라는 하차지점 바로 앞그것도 큰 짐과 함께 두 자리 나 차지해 버렸다. 내 뒤에 탄 다른 사람들은 앉을자리가 없어 몇 명이나 서있었지만 아줌마는 묵묵히,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당당함을 가지고 돌덩이처럼 앉아있었다.


내가 아까 저 아줌마가  앞에 와 줄 섰때 한마디 할걸 그랬나.


노와 후회로 범벅된 기분이 한참이던 때 그 아줌마가 일어나 하차 벨을 눌렀. 런데 아줌마는 하차벨을 누르고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다른 이들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저기 내가 앉았던 자리인데 가서 앉으세요. 다리 많이 아프죠?

학생, 나 내리니까 여기 와서 앉아 얼른.


아줌마는 내리면서 서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앉혀주는 오지랖을 부렸다. 그런데 버스 안에 울려 퍼지는 아줌마의 목소리, 발음에서 그 연세에  맞지 않은 어눌함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장애가 있는 분 확실했다.


네. 고맙습니다.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아줌마가 자리에 앉혀 준 두 사람 온화한 미소로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두 사람은 그녀를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의를 다해 그녀를 대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버스 안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을 이해듯했다. 

아, 좀 불편한 분이었구나. 우리가 생각했던 몰염치의 얌체족이 아니었구나. 하따스한 마음 눈빛이 모여 안타까운 듯 그녀를 감싸주었다.



어쩌면, 그녀에게조금의 악한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치기를 해도 되고 난 몸집이 크니깐 두 자리를 다 써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그 버스에 있던 우리들은 그녀를 이해해 주었다.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못하는 그녀의 어린 마음을. 그게 창피함이라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녀가 내리고 난 잠시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던 그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쳐다봤다. 스크에 얼굴이 다 가려져 있었어도, 두 눈이  예쁜 사람들이었다.

버스는 집을 향해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 아줌마도 집으로 잘 갔으려나. 해가 부쩍 짧아졌다고 느껴지8월 말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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