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날은 아직도 오지 못하고 있다. 단톡 방에서 '어떻게 할래? 요즘 그래도 좀 잠잠한 거 같은데, 우리 만날까?'라는 말이 오고 가기는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그래!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모임뿐이 아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며 하. 제주도 간 게 언제였더라 생각을 해 보니 작년 가을의 춘천 여행을 끝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여행도 사실 그저 하면 그뿐이다. 올해 3월 출산을 한 절친의 아기는 꼬물이로 태어나 포동포동 살이 쪄가는 6개월 차 아기가 되어가는데 아직까지 안아 보지도 못했고, 핸드폰 속 여행 사진의 카테고리는 텅 비어있다.
그저 내가 과감히 '선택'을 하기만 하면 친구와 아기도 만나고 바다를 보러 여행도 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요즘 제주도,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많던가. 그러니 나도 그들처럼 그냥 '조심해서 다녀오자'는 선택과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도 올해는 나의 선택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친구와의 모임에서, 여행지에서 코로나에 감염이 된다면 내 직장, 가족 친구 모두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살면서 선택이 이토록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난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신중하지 못해 책임을 져야 했던 수많은 일들을 떠올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그런데 올해는 심각한 결정장애가 온 사람이 되어버렸다. 선택이 너무나 어려워진 것이다. 가족과 함께 밖에 나가 외식을 할 때도 사람들이 많은 식당을 피하게 되는 선택을 해야 하고 2.5단계 거리두기 때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것이 괜찮을지, 머리가 지저분해도 좀 더 참아볼지 하는 것도 나름 어려운 선택이었다.
좋아하는 영화 중에 '다우트'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가 가지는 증거 없는 의심과 확신, 그리고 불확실성에 관해 깊은 생각을 던지는 수작이다. 이 영화의 주연인 매릴 스트립의 대사는 영화를 본 이후로 내가 가슴 깊이 새기는 문장이 되었다.
쉽게 내린 결정은 미래의 내가 책임져야 한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한 뉴스를 보며, 또 나의 일상생활에 있어 종종 이 대사가 떠오르곤 한다.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보고 싶은 친구는 만나면 그만이고 하고 싶은 일도 그냥 해버리면 된다. 하지만 코로나라고 하는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선택이 그냥 단 한 번에 그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만큼은 우리 모두 쉽게 선택하고 결정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신중하게. 잠시 숨을 고르고 나와 남을 위한 선택을 하면 어떨까.미래의 내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