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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May 16. 2018

넬(Nell) - Healing Process.

상처의 치유는 상처와 직시하면서 시작된다.

넬(Nell) - Newton's Apple
발매: 2006
별점: 9.5/10
상처의 치유는 상처와 직시하면서 시작된다.

필자는 밴드 못(Mot)의 1집 ‘비선형’ 앨범의 9번 트랙인 “자랑”이라는 곡을 굉장히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못(Mot)이 하는 음악에 깔려 있는, 폐장한 놀이동산을 바라보는 듯한 감성에 끌리는 마음의 탓도 분명 클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뇌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보컬 이이언이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오늘은 그대 생각하지 않았어요. 난 그걸 자랑하려고요

이 가사가 노래에 온전히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 든다. 그대 생각을 하지 않았음을 자랑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그대’라는 생각을 해야만 하는 그 역설적인 상황을 정말 필요한 만큼의 단어로만 나타낸다. 


누구나 그런 시간들이 있다.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겼는지 모를 누군가의 질문에 웃으며 ‘다 잊었지 뭐,’라고 답하는 순간들에 우리는 아직 온전히 잊지 못했음을 다시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밴드 넬(Nell)의 정규 3집 ‘Healing Process’ 앨범은 나에게 상당히 버거운 노래들로 가득하다. 안 그래도 17곡을 꽉꽉 채워 넣은 2CD 구성의 이 앨범은 힐링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고통들을 마주하게 한다. 거룩하고 고귀했던 영혼과 육체의 관계가 영원에서 순간으로 변함을 노래하는 “현실의 현실”부터 시작해서, 그만 포기할래 이제는 그만둘래라며 본인의 재생 능력의 한계를 탓하는 “Movie”까지. 이 앨범은 힐링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허나 필자에게 이 앨범은 흔히들 생각하는 밴드 넬(Nell)의 치기 어림이라고만 느껴지지 않는다. ' Healing Process'는 많이들 묵과하는 사람의 또 다른 성숙함을 담고 있다.


CD1의 7번 트랙 "치유"에서 김종완은 부른다.

나를 갈라 내 안에 너를 들여놓고 싶은데, 
그래서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지 보여 주고 싶은데

타자와 나 사이의 공감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거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울부짖는 이 노래는 타자와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지워내고, 어지러운 마음을 비워낸다고 해서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통들을 하나하나 들어다 보며, 그 모든 아픔들을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밴드 넬(Nell)의 힐링은 시작된다. 만약에 정말 모든 것들이 끝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며, 끊어질 듯한 이 고통과 배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알게 된다. ‘Healing Process’는 온전히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고통을 선명하게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성장은 더해지는 과정이지 감해지는 과정이 아니다. 밴드 넬(Nell)의 명반이라고 불리는 이 앨범은 잊지 못해서 치기 어린것이 아니라 잊지 않았기에 성숙하다. 더욱 선명하게 아픔들을 짚어내기에, 성장의 과정의 놓여있는 음악이다. 결국 상처의 치유는 상처와 직시하면서 시작된다.


Tracklist 

CD1 
1. 현실의 현실 
2. 섬 
3. Good Night 
4. Counting Pulses 
5. 그리움 
6. Beautiful Day 
7. 치유 
8. 마음을 잃다. 
9. 안녕히 계세요. 
10. 어떻게 생각해. 
CD2 
1. 얼음 산책 
2. Meaningless 
3. 오후와의 대화 
4. A.S. 
5. 한계 
6. 51분 전 
7. Movie 
8. (Hidden Track) 1분만 닥쳐줄래요.
(2006) Healing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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