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C에게 이어폰이라는 개념은 생소했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어폰이 없다 해도 음악은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S의 추천으로 린킨파크와 에미넴의 음악을 주야장천 듣곤 했던 C는 어째서인지 이어폰을 쓰지 않았다. 얼리 어댑터였던 아버지가 연골 전도 이어폰을 들고 와도 시큰둥했다. C는 기능이 훌륭했다 하연들 그 기기를 쓸 이유를 찾지 못했다. C는 그런 사람이었다. 행동에 대한 사유는 결코 외부에서 유입되지 못했다. 오로지 내부에서만 발현된 동기만 그를 움직였다.
그랬던 그가 이어폰을 사게 된 이유는 아마 그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기 시작해서일 것이다. 잔뜩 격양된 음악들을 듣기 시작한 C는 뭔가 어디서든 음악을 듣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인생 첫 이어폰을 샀다. 볼륨을 최대치로 힘껏 키우고는 길거리와 교정을 누볐다. 더 자주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그는 듣는 음악의 스팩트럼을 넓혔다. 주변 친구들은 들어본 적 없는 아티스트들을 찾고 전파는 곳에서 그는 즐거움을 느꼈다. 단순히 음악을 더 듣고 싶다는 사유에서 추가적인 사유를 얻게 된 C는 더욱 이어폰에 집착했다.
얘야 그렇게 볼륨을 크게 해서 들으면 귀가 상해.
괜찮아요.
C는 걱정해주던 사서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해의 겨울 C는 왼쪽 귀의 청력을 조금 잃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어폰을 쓰고 다녔다. 줄어든 귀의 청력은 더 높은 볼륨으로 상쇄시켜서 들었다. 오른쪽보다 왼쪽을 더 크게 듣는다면 큰 차이는 없었다. C에게는 귀가 나빠졌다 하연들 이어폰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대학에 입학하는 해, 애인이 생겼다. 첫 연인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던 C는 줄곧 여러 사람과 만났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시간과 성인이 됐다는 감각이 그에게 이 연애를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의 애인은 꽤나 근사했다. 쳇 베이커를 즐겨 듣던 Y는 C와의 첫 데이트에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왔다. 당당하게 플레이리스트를 건네 주곤 혼자 이어폰을 꼽고 본인을 응시하는 C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은 C가 사랑에 빠지게 하긴 충분했다. Y는 C에게 새로운 시간을 선물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사십육 분 이십칠 초. 그 시간 동안 둘은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서로를 응시했다. Y가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은 C가 Y를 사랑하기에는 충분한 이유였다.
Y는 C가 이어폰에 집착하는 것을 좋아했다. 둘이 나란히 누워 스피커로 튼 음악을 함께 듣다가도 결국 이어폰을 나눠 끼게 되는 시간들을 Y는 사랑했다. 물론 Y는 굳이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듣겠다고 고집하는 C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Y는 그런 모습을 전체로 사랑했다. 그에게 사랑이란 때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에서 나왔다. 따지고 보면 이어폰으로 듣나 스피커로 듣나, 그건 단지 선택의 문제였다. C와 Y의 차이는 C는 두 선택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Y를 대했다는 점이었고, Y는 두 선택지의 존재를 인정하며 C를 대했다는 점에 있었다.
새로운 음악은 늘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Y가 C에게 들려준 새로운 음악들은 가을이 되자 떨어졌다. 그나마 새롭게 찾아오는 음악은 기묘하게 C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늘 누군가에게 새로움을 선물했던 C는 본인이 그 반대편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는 심기가 불편했다. 열등감이란 무릇 본인 안에서 자라기 이전에 타인이 존재해야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C는 이를 참을 수 없었다.
Y가 C를 안았던 마지막 날 C는 이별을 결정했다. Y가 소중한 듯 C의 얼굴을 부둥켜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는 순간에도 C의 동공은 Y 너머의 어느 한 공간을 찾고 있었다. 그날 밤 Y는 유난히 오래 C를 안았다. Y가 깊게 잠들고 나서야 C는 움직였다. Y의 방에서 본인의 흔적들을 하나씩 하나씩 챙겼다. 둘이 보이는 흔적은 하나뿐이었다. 함께 갔던 콘서트 장에서 찍었던 사진이 냉장고에 붙어있었다. C는 짐과 사진을 챙기곤 방 밖으로 나섰다.
C는 거리에 나서서 이어폰을 꽂았다. 랜덤 재생 버튼을 누르고는 길을 건너기 위해 발을 내밀었다. 여전히 C에겐 이어폰을 쓸 이유가 있었다.
트럭이 빠르게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