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C, 하이힐을 신고 부르는 "하이힐 NO"에 대하여

이 컨셉은 진보일까 퇴보일까

by avocado listens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CLC가 8번째 미니 앨범 [No.1]으로 컴백했다. 여자 아이들의 소연이 작사, 작곡하고 멤버인 예은이 작사에 참여한 타이틀곡 'NO'는 씨엘씨의 첫 멜론 top 100 진입 곡이 되었다. 공식 소개글에 따르면 'NO'는 이런 곡이다.


타이틀 곡 ‘No’는 신스 베이스 특유의 질감과 다이내믹한 베이스라인이 어우러진 댄스 곡으로 청순, 섹시, 귀여움이라는 기존의 수식어를 부정하기보다는 ‘한 가지 색으로는 날 표현할 수 없다’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Red lip NO, Earrings NO, High heels NO, Handbag NO 를 선언하듯 저음으로 읊조리며 시작하는 이 곡은 역동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베이스와 킥이 추가되면서 수동적이기보단 능동적인, 고분고분하기보단 할 말은 하는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씨엘씨는 무대에서 곱게 웃어주지 않고, 강한 눈빛으로 절도있는 안무를 선보인다. 청순, 섹시 등 겉모습을 기준으로 라벨링 되곤 하는 여성 아이돌이 그런 표현들론 나를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나는 너를 위해 바꾸지 않는다고, 나는 내 식대로 날아가겠다 노래한다는 점에서 'NO'의 가사는 여성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립스틱도 안 바르고, 하이힐도 신지 않겠다는 가사는 최근 페미니즘 운동의 화두 중 하나인 탈코르셋 운동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이 곡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해석과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남과 동시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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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뮤직비디오에서 씨엘씨는 구두, 보석 등 여성들이 치장할 때 사용하는 물건들을 관에 넣고 불태워버린다. 꾸밈노동과의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듯한 이 장면은 시각적으로 쾌감을 주는 하이라이트가 되었으나, 동시에 모순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관을 들고 있는 씨엘씨 멤버들이 구두를 신고, 보석을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페미니즘적인 비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하이힐 NO' 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이힐을 신고 있는 것은 연출적으로 옥의 티라고 느껴진다. 가사를 읽었다면 하이힐만큼은 신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스크린샷 2019-02-05 오전 11.14.21.png 'NO' 뮤직비디오 캡쳐


어떤 사람은 모순은 있으나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린 걸그룹 노래보다는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페미니즘을 돈벌이에 이용하려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걸그룹의 이런 컨셉이 잘 되는 걸 보여줘야 점점 다양한 컨셉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기만적인 백래시라고 말한다. (백래시는 사회적 진보/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일컫는 용어인데, 페미니즘에 대한 정치, 미디어,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격을 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이 첨예한 갈등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지금 나아지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씨엘씨는 2016년 권은빈과 엘키를 합류시키면서 한 번의 멤버 변화를 겪었는데, 7인조로 재편한 뒤 처음으로 발표한 곡의 타이틀곡은 '예뻐지게'였다. "내 모든 미모 각선미 비결이 뭐, 그건 내가 신은 높은 하이힐, 잘 봐 완벽해 보이는 비밀, 날 봐 하이힐 하나로 모든 게 달라 보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걷는 것이 자기가 예뻐진 비결이라 이야기한다.


스크린샷 2019-02-05 오전 11.42.25.png '예뻐지게' 뮤직비디오 캡쳐


뮤비 속에서 하이힐을 신은 멤버들은 처음엔 다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하지만, 연습을 거듭해 하이힐을 신고도 당당하게 걷게 된다. '숙녀답게' 마카롱을 곁들인 티타임을 즐길 수도 있게 되고(하이힐이 어색한 '미-숙녀' 상태에선 원두를 갈지도 않고 핸드드립을 해서 커피를 망쳐버린다. 이 무슨..) 자기를 꾸밀 줄도 알게 되지만 어마어마한 지출을 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뮤비가 끝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적대상화와 여성혐오로 이루어진 이 뮤직비디오를 그리 먼 과거도 아닌 2016년에 발표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이힐 따위 신지 않겠다며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의아하다. 그러나 하이힐이 내 각선미의 비결이라고 노래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기에 현재의 CLC를 응원하고 싶고, 다음에는 더 나아진 이야길 해주길 기대하게 된다. 그들이라고 그 모순을 전혀 모르진 않을테니까. 비록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넓은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아직은 지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살아 남아서 다양한 모습을 그릴수록 더 좋은 여성의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 번의 아쉬움을 실패라고 단정 짓기엔,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2016년의 '예뻐지게'와 2019년의 'NO'를 비교해보면 CLC는 분명 달라지고 있다. 'BLACK DRESS'에서 'NO'로 이어지는 CLC의 시도가 반가운 이유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원하는 대중들이(대체로 여성 소비자겠지만) 있다는 것을 소속사 쪽에서 캐치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긴다. 이 때 대중이 해야 하는 것은 그 선택이 옳았다는 사인을 주는 것이다. 수치가 변하면, 회사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인을 내가 왜 굳이 주어야 하는가?

루키즘에 기반을 둔, 청소년 착취와 성적 대상화에 뿌리 내린 이 케이팝 산업 따위 망해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의미있는 비판일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사라지기 힘든 이 산업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시도들을 응원하고 소비하는 것, 그 작은 시도가 다음 번엔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 크지도 않은 남초 팬덤을 가진 CLC에게는 작지 않은 시도였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NO'가 더 좋아질 수 있었던 방법

내 기준에 'NO'는 가사가 신박해서 한 번은 더 듣게 되는 곡이었다. 가사를 지킬 것이라면, 스타일링이 달라져야 한다. 앨범 자켓에 등장한 의상은 버버리 패턴과 블랙 컬러를 활용한 의상이었고, 뮤직비디오에서는 비비드한 컬러의 패턴에 역시 블랙 컬러를 매치하고 있다. 악세서리는 볼드한 귀걸이, 굽이 얇은 구두와 부츠 등이 활용됐다. 도시적이고 세련되면서도 섹시한 느낌이 곡과 맞아 떨어지긴 하지만, 가사가 이렇다면 적어도 하이힐, 레드립, 이어링만큼은 도드라지지 않는 다른 스타일링이어야 한다. 화려한 느낌을 주는 소재를 활용하고,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 전에는 센터에 선 멤버 승연이 아이템을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본 몇 가지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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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택 레더 + 볼드한 스니커

광택감이 있는 레더는 지금도 사용되는 소재지만, 블랙으로만 사용된다. 화려한 느낌을 주기 위해 컬러가 있는 광택 레더를 사용해 자켓, 베스트, 바바리 같은 아우터를 제작하고 롱 쉬폰 드레스나 종아리가 극적으로 넓어지는 부츠컷 혹은 통 넓은 슬랙스를 입힌 뒤 볼드한 스니커를 스타일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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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컬러풀한 페이크 퍼

가장 화려한 스타일링을 소화하고 퍼포먼스의 중심이 되는 멤버 승연에게 어울릴 것 같다. 퍼 자켓 안에는 블랙 탱크탑 혹은 얇은 터틀넥에 블랙 팬츠를 입고, 화려한 자켓만 툭 걸치는 것. 헤어는 뮤직비디오에서처럼 높게 묶거나, 춤출 때 돋보이도록 탱글탱글하게 볼륨을 주어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에서 "red lip, no"를 외치며 이 자켓을 벗어 던지고 춤을 춘다면 퍼포먼스의 극적인 매력이 배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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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죽/벨벳 점프수트

밑위가 긴 점프수트도 비율이 좋아보이면서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소재/패턴을 어떻게 쓰느냐, 어떤 부자재를 붙이느냐에 따라 꽤 화려한 의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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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버사이즈 롱자켓+벨트+양말+스니커

허벅지까지 길게 오는 오버사이즈 롱자켓에 벨트를 해 원피스처럼 입고, 스타킹+양말+스니커를 매치해 스트릿 패션처럼 연출. 마르고 걸리시한 느낌이 나는 유진에게 어울릴 것 같다.



CLC는 이미 5년차에 접어든 아이돌, 그것도 걸그룹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제는 '씨엘씨 같은 노래'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음 번에도 '씨엘씨 같은' 노래로 돌아와주길, 그 때는 이번보다 더 완성도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길, 그리고 그 컴백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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