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아이들
시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보통 그 존재를 잊고 산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공기가 그렇고 우주가 그렇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우리 기관에서 일하기 전까지 나는 요즘 세상에 불행한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매스컴을 통해 극단적인 아동학대 사례나 그 숫자를 접한 적은 있다. 그렇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해 '시설'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지는 정말 몰랐다. 적어도 내 일상 반경에서는 그러한 불행을 목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기관에서 일하고부터는 매일 숨 쉬듯 아이들의 불행을 접한다. 예전에는 부모가 사망하거나 생활의 어려움으로 유기되어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학대피해아동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이 가진 길고 짧은 개인사는 2장짜리 아동카드에 묘사되어 있다. 매번 이들의 삶을 읽어내는 것 자체가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고 아이들의 현실 앞에 막장드라마는 오히려 순한 맛이다. 아이들의 스토리를 언급하면 그 무게가 더 실감 나겠지만 개인의 불행을 이야깃거리로 다루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겪어낸 고통의 결과는 '정서 행동상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ADHD 약물 복용'은 거의 디폴트값이고 우울증, 분노조절장애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아이들도 많다. 정서적인 어려움을 타고난 아이들도 개중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아이들이 견뎌온 인생의 파고가 너무 거세다. 평생 이런 고통을 겪은 사람이 정신과 약을 안 먹는 게 비정상이다.
어떤 아이들은 일시보호시설에서 잠깐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장기시설(아동양육시설 또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하게 된다.
아이가 가진 정서 행동적인 문제가 클수록 입소할만한 시설을 찾기가 힘들뿐더러, 입소 후에도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 크디큰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시설은 입소하게 된 이유에 따라 구분되지 않는다.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 유기, 부모사망, 부모수감, 부모질병, 미혼부모까지 다양한 과거를 가진 아이들이 모두 섞여 자란다. 크고 작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니 서로를 보듬어주며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까? 늘 그렇지는 않다.
어릴 때 시설에 들어와 평생 보육사 선생님을 엄마로 의지하며 평온한 삶을 이어오던 A가 있다. 부모에게 학대피해를 당한 후 분노조절장애 약을 복용하는 B가 한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B는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사소한 이유로 화를 표출하여 누군가를 때리거나 자해를 한다.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A를 향해 부모가 없는 아이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B는 가정복귀프로그램을 거쳐 집으로 돌아간다. A의 망가진 일상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생활지도원(보육사)들은 3교대 근무를 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만나는 엄마와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만나는 엄마가 다르다. 그다음 날 아침에 만나는 엄마는 또 다른 사람이다. 어린아이들은 안정적 애착관계를 만들기가 힘들고, 큰 아이들은 사춘기를 더 혹독하게 치러낼 수밖에 없다.
아동복지법은 '보호대상아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
보호자가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아이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아이를 위해 대신 싸워줄 존재가 없거나 목소리가 약하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아동복지 분야에서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큰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한 번씩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고가 몇 번이나 일어나고 나서야 경찰이 아동학대신고를 받고 지자체와 공동으로 대응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시설을 퇴소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정책도 청년들의 사망(자살) 이후에야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의 시설 입소가 아동보호의 '시작점'이라면 보호시설 퇴소는 그 '종료점'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간 세간의 관심이 두 지점에 모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시작과 끝 사이.
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건강한 마음과 안온한 일상에 더 많은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