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하필 그 시기에 상대방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런 시기가 도래한 건지 알 수는 없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독 쓰지도 않던 말을 내뱉어버리게 된다거나
유독 내비치지 않던 감정을 내비쳐버리게 된다거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맞닥뜨리게 되면 그 생소한 자신의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아니, 이건 내가 아니잖아.
어쩐지 마음이 편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라도 되느냐 그 부분을 더더욱 들여다보기도 한다.
치유를 돕는 인연은 그렇게 당황스럽고, 당혹스럽고, 심지어 온갖 괴로움과 생경한 감각을 깨워낸다.
그래서 화들짝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달아나버리는 건 가장 본능적인 처사일지도 모른다.
익숙하지 않은 것.
혹은 너무도 익숙하여 깊이 파묻혀 버린 그 어떤 것.
결코 밖으로 꺼내어 보이고 싶지 않았던
저 깊은 심연에 콕 박혀있던 그 날카롭고 아픈 것
그걸 구태여 밖으로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익숙한듯한 낯섦을 무뎌질 정도로 견뎌내고
다시 품어 집어삼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괴로웠던 인연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았던,
그러나 그 고통마저도 당연한 일부였던,
그 모든 것들을 거둬들였다가 다시 품어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그런 치유가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