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을 이해하고, 그 순간마저 감싸 안아야 하는 것 같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그 일들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이성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배움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 배움의 질과 방향은 그 사람이 살면서 쌓아온 경험과 축적한 지혜에 의하여 정해질 것도 같지만,
대체로 어느 찰나의 순간에는
"나도 내가 아닌 순간"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순간"
들에 직면하기도 한다.
도대체 그때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고, 그때 조금만 참았다면 좋았을 걸 하는 순간.
내 의지가 아니라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생소한 모습을 스스로가 자각하는 경우는 더욱 강도 높은 자아성찰과 반성과 죄책감, 수치심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었다.
"그냥 서로에게 그 순간의 그 반응이 필요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반응이 있다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자꾸 그렇게 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
스스로 이성으로 통제하려고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도
이건 마치 영화 'Get out'에 나오는 최면에 걸린 흑인처럼,
분명히 상황을 보고,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맞닥뜨리는 상황.
그게 나 자신일 때, 대체로 사람들은 인식을 거부한다.
그리고 타인일 때는 상대방을 미워하고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그 '사건' 자체는 각각의 당사자들에게 독자적으로 할당된 어떤 과제와도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단지 그 시발점이 '특정 대상'이었을 뿐이지, 특성 대상인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다는 의미.
게임에 나오는 NPC(가이드나 퀘스트를 주는 존재) 정도로 여기고
굳이 상대방에게 감정이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기고,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하고 넘기고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라면 그건 내가 이미 초탈한 과제랄까
그러니까 얼마나 게임이랑 비슷하냐면
5 레벨의 사람에게 대체로 4 레벨 이상의 몹들이 공격을 해오는데,
3 레벨 이하의 몹들은 5 레벨을 마치 없는 것인 양 취급을 한다.
서로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 범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내가 뭔가에 반응을 한다면
그 특정사건이나 상대방에 한정되어
아직 나는 그와 동등하거나 그가 나보다 더 높은 레벨의 어떤 존재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걸 마주하고, 깨우쳐야 서로 영향을 주지 않게 되는 지점이 오는 거랄까.
정형화된 레벨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과 사건은 상호 간에 발생되는 고유한 차원의 수수께끼 동화가 펼쳐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 동화는 잔혹할 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고
지독하게 서로를 미워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하게 현 상황에서 필요한 반응을 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합리화하고 싶다.
그렇게 믿고, 그런 크고 작은 사건들을 고이고이 잘 넘기고, 그런 이질감이 가득한 상대방마저 그의 단편이려니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